확대 l 축소

<봉축특집2> 미국불교는 키치(kitch)불교인가?

홍무흠 (전)서울외대 겸임교수
19세기 말 키치는 시민사회에서 발생하여  자연스럽게 대중사회로 이행하였다. 그로 인해 일상생활 환경도 크게 변화했고 현대인들은 키치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불교가 유럽을 거쳐 미국에 뿌리내리기까지 필연적으로 발생한 충돌, 교섭, 융합을 살펴본 것을 미국불교사로 정리한 릭 필즈는 1960년대 하바드를 다니며 학생운동으로 학교를 포기하고 언론인, 시인으로 활동하다, 티베트불교 스승들에게 사사를 받은 미국불교사의 권위자이다. 그는 미국의 사상사나 미국문화사에서 등에서 다루기 어려운 미국불교사에 대한 풍부하고 대중적인 이야기로 정리했다. 아울러 미국불교는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조명하고 있으며, 미국인 특유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드러내 주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경제적 풍요 속에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하는데 대항하는 동기로 생겨난 문화, 인간 정신을 신뢰하며 낙천적인 전원생활을 추구했다. 1950년대 이후 비트문화(beat culture)의 주요한 주류적 인물인 시인과 소설가, 불교인 등은 기존의 서구적 가치와 문화를 배척하고 종교, 의학, 철학, 환경, 음악 등의 집적된 발전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화운동인 뉴에이지(New Age)적 영성운동에 관심을 두고 파악했었다. 이러한 미국의 시대적 조류에 힘입어 미국불교에 주류적으로 자리 잡은 아시아 불교는 일본불교와 티베트불교이고, 이외 한국, 대만, 베트남, 태국, 스리랑카의 불교 등도 가세하고 있다.
미국 인구는 대략 3억 명이 조금 넘고, 10년마다 인구조사를 하고 있다. 인구조사에는 여러 항목의 분포도 함께 조사하지만, 미국의 불교신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300백만 정도가 감소했다’는 것과 같이 거의 이해가 될 만한  통계를 발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 수를 알 수 없다는 숨겨진 특징이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불교신자가 얼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답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해야 하는데, 미국불교를 많이 알 것이라고 하는 미국불교 인사들도 이구동성 그 수를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미국 백인불교 신도 단체 중에서 가장 큰 단체는 샴발라센터이다. 이 단체 본부로는 1971년 설립된 콜로라도 북부의 소나무가 무성한 숲과 푸르른 초원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산에 세워진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 mbhala Mountain Center)가 있고, 이를 비롯해서, 뉴욕 샴발라센터, 버먼트에 있는 수련장인 카메쵸랑. 나루빠 대학교 등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를 한 미주불교언론계 인사도 미국불교 신도에 대헤서는 비슷한 의견인 것이다. 
미국에 티베트불교를 정착시키고 불교대학을 설립한 트롱파 린포체 아들인 사콩 미팜 린포체가 이끌고 있으나 핵심 지도자 대부분은 백인들이며, 이 단체는  콜로라도를 비롯하여 미국 전역에 어느 정도 주민이 형성되어 있는 도시에는 모두 그 조직의 센터가 있는 규모가 큰 곳이다. 그런데 이 단체 역시도 회원들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더욱이 여기에서 명상수련하는 사람들 모두가 불교신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어림잡아 20만명 정도라고 오랫동안 이 단체에서 수련해온 미국불자들은 말한다.  
미국에서 간화선 수행을 지도한 숭산스님 계열 사찰에 자주 나오고, 간화선 수행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불교신자 인지 물어본 사람이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유대교 신자” 입이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난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불교신자도 있지만, 불교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것을 반증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미국불교의 현상 때문인지 샴발라센터에서는 불교신자를 따로이 파악해 통계를 내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명상을 통해 불교수행을 할 수 있게 수행공간을 열어 놓고 있다. 
뉴욕에는 1977년 설립된 오메가 인스티튜트(Omega Institute)라는 명상 전문센터가 있다. 여기에서는 불교의 여러 수행법을 비롯하여 세계 유명한 불교스님, 명상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명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은 열기가 조금 주춤하지만 엄청난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리고 등록 회비도 매우 비싸다. 수련 기간도 3일. 5일. 일주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 역시 불교신자를 구분해 통계를 내지 않는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게 불교 활동을 하는 곳은 티베트 불교계가 드러나 보인다. 티베트 사람들이 아니라 해도 미국의 대학에서는 티베트 불교학자들이 가장 많다. 그 수만도 수백 명에 이른다. 그리고 일본불교 학자가 그다음으로 숫자가 많고, 100여 명 정도로 추산한다. 한국불교 관련 학자들도 10여 명 정도 있다. 미국내 일본불교는 정토진종이 120년 정도 되었고, 그 다음 조동종이 다. 일본내 불교계 단체로는 창가학회가 가장 조직적이고 활발하다. 다음이 정토진종으로 염불 위주의 수행이다. 그래서 한때는 가장 교세가 강했지만, 선  수행으로 변화하면서, 일본불교계 단체로는 미국에서 조동종과 창가학회가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동종은 묵조선을 가르치는데,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조동종 수행자였다. 는 것이 보도되면서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조동종 묵조선 수행을 서양인들도 많이 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 조동종의 경우 일본인 스님에게 묵조선을 지도받은 미국인 스님들이 조동종을 나와서 독자적인 명상센터를 설립한 백인들이 다수가 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리고 위빠사나 명상 수련을 하는 사람들도 20~30명 단위의 소그룹 들이 아주 많다는 글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 통계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창가학회 역시도 소그룹이 매우 많다. 메릴렌드, 버지니아 등지를 포함하는 워싱턴DC 창가학회 단체만 하더라도 소그룹이 1천 개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통계를 창가학회는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불교계에서 불교신자들의 가장 정확한 자체 통계를 가진 단체는 일본 정토진종과 창가학회라고 볼 수 있다.
백인들이 대량으로 불교계에 편입된 것은 1950년대 비트세대, 그리고 60년대의 반전. 평화운동 세대라고 미국불교사 전공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들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티베트인 초감 트룽파 린포체가 불교의 큰 바람을 일으켰다. 이어서 달라이 라마, 베트남의 틱냑탄 스님과 같은 분들의 영향으로 미국불교가 지속적으로 전파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금도 ‘mindfulness’가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지만 삼발라센터. 숭산스님이 세운 프로비덴스 선원을 비롯한 미국인 불교신자들 선센터에 가보면 불교 인구는 전에 비하여 오히려 줄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센터에는 나이든 노인들이 많고 젊은 불교신자는 검퓨터를 통해 불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 별로 보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시아불교는 이제 미주와 유럽 등 서구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종교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미국에서는 불교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 드러나 보인다. ‘남묘호랑게교’로 불리는 일본의 창가학회는 캘리포니아 L.A에 체계적인 불교대학을 설립하고, 대만과 베트남 불교계는 L.A 근교에 산들을 사들여 대만은 납골당을 베트남은 대만식으로 지은 대규모 사찰 서래사 보다 규모가 더 웅장한 사찰을 건립하고 있다. 그리고 콜로라도 록키산에 미국인 손으로 이루어진 불사로 다르마 카야 대탑을 세우고 대규모 제막식을 마쳤다.
동양의 불교는 이제 수행과 가르침은 국경과 인종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삶의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학계나 지식인들의 평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우든피쉬 재단(The Woodenfish Foundation)이 2019년 5월부터 2일간 시애틀 워싱턴 대학교에서 ‘불교-과학-미래’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주제로는 인공지능, 명상 앱과 작용 가능한 기술, 그리고 행복의 과학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신경과학, 유전학, 인문학, 현대와 고대 명상 연습이 어떻게 우리의 개인적. 정신적 삶을 형성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재단 운영실장 새뮤얼 고먼(Samuel Gorman)은 “불교와 과학은 모두 현실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만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과학과 불교의 접점을 모색하고 관련하여 더욱 흥미롭고 폭넓은 대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첫 번째 섹션은 ‘머리를 너머(Beyond the Body)’를 주제로 뇌의 사고 범위를 초월한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종교적 전통이 무엇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고, 두 번째 섹션에서는 ‘몸을 넘어서(Beyond the Body)’를 주제로 인간 경험을 향상시키는 통찰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과학과 기술 장치에 초점을 맞춰 발표되었다. 세 번째 섹션은 ‘지나간 것을 너머(Gone Bey ond)’를 주제로 조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과학과 기술, 영적 전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학술대회를 통해 미국에서 불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첫째, 종교에 관계없이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열기도 뜨겁다. 이 명상을 응용한 마음챙김(mindfulness)이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둘째, 미국은 불교를 응용한 심리학이 일찍부터 발달되었다. 이에 관한 단체도 많이있고, 관련 서적 출판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신과 의사들도 이 분야에 매우 관심이 많다. 셋째, 미국은 대학 출판사와 미국 출판계의 선구자 샴발라출판사 등 일반 출판사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불교 책이 나오고, 특히 인터넷 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명상에 관한 책은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넷째, 미국불교 신자들은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들이 많다. 또한 여성 불교지도자들이 많으며 이들이 미국불교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한 예로는 유대계 미국인들은 자신이 ‘유대불교신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미국의 불교 추종자들은 대체로 불교교리나 율법의식이 덜하고, 수행과 관련하여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이 널리 알려져 있어 명상에 치중하는 분위기이다. 또한 수행체도 재가신도 중심적인 모습으로 구성하고 있다.
미국불교는 지성적이며, 과학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어 기부와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새로운 모습의 불교이며, 또한 미국식 불교는 과학과 의학 들 학문 영역까지 확대해 심리학과 실리치료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기업 리더십 프로그램에도 적용하는 등 그 폭은 상상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식 불교의 흐름이 지나치게 엘리트 지향적이고 서구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세계 불교계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불교의 흐름을 정의하는 이들은 백인불교가 이민자들의 이삿짐 불교시대, 선(禪)과 명상의 대가 일본인 스즈키 다이세츠(Suzuki Daisetsu), 한국의 간화선의 숭산스님, 독보적 명상을 개척한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등 고승들이 미국을 방문해 포교하는 수출 불교시대(Export Buddhism)를 넘어 많은 수행자들이 한국, 일본, 미얀마, 인도 다람살라 등으로 직접 찾아가 수행하는 수입 불교시대(Import Buddhism)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미국불교는 이제 동양불교에 크나큰 도전과 자극을 주려 하고 있다. 다만 미국식 불교의 흐름이 엘리트 지향적, 서구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단점도 안고 있다고 보지만 세계 불교계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흐름의 미국불교가 한국에 수입되면 한국불교계는 뜻밖의 돌풍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불교를 배워 한국불교를 개척한 것처럼, 그러나 한국불교는 그 기반이 역사의 깊이와 훌륭한 고승들의 사상사 와 전통문화에 두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삶과 사유의 트랜드가 확연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불교가 그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는 염려가 불교신자들에게 잔잔히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식 불교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자신들의 방식으로 진화 발전할 것이라 보인다. 미국불교의 영향력이 커지면 불교,힌두교 등 동양의 영향을 받아 신비롭고 편안한 분위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인 뉴에이지 음악이 아시아에 역 수입되어 큰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미국불교가 역수입되면서 미국식 선방이나 명상센터가 도심에 자리잡고 자유분방한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최근 미국불교를 우리가 듣기에 너무나 생소한 키치불교로 표현하고 있다. 키치라는 말은 정리해 보면, 19세기 말 키치는 시민사회에서 발생하여 자연스럽게 대중사회로 이행하였으며 그로 인해 일상생활 환경도 크게 변화하였고 인공적이며 확고부동한 대중문화로 이행하였으며, 그로 인해 일상생활 환경도 크게 변화하였고 인공적이며 확고부동한 대중문화가 성립해 갔다. 또한 20세기  에는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고 복합적인 연관성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키치적인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무한한 자율적 감수성을 존중함에 따라 예술의 영역에서 다원화를 제기하였고, 키치의 문제는 가치론의 입장에서 벗어나 대중문화와 함께 사회구조 안에서 쉽게 통용되어지고 있으며, 기존 미학적 개념을 초월한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접근으로서의 불교를 키치적 대중문화로 연결시켜 완성시킨 것이 미국의 키치불교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 불교는 자신들에게 어떻게 다가와 있으며,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는 무엇이 인식되고 있나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는 산속 사찰에서 고요한 모습으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을 떠올리겠다. 그러면서 욕망을 초월한 무소유의 삶을 통해 마음의 본체가 무엇인가를 찾기위해 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현대인들의 삶에는 사찰 템플스테이 정도로 연결시켜 보고있지 않을까?
오늘날의 불교는 키치적 문화로 전개되고 있다는데 자유로울 수 없지 않느냐는 조심스러운 진단을 해본다. 해탈 즉 성불이라는 불교의 본질적 지향점과는 이탈된 채 몇가지 요소들만 따로 정리되어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를 최근 현대불교의 지향점을 이해해보려는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고승이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스님이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에 원효, 만해, 성철, 법정 등 문항을 역사적 시대별로 고승 10명을 열거했다. 응답자의 38%가 법정, 뒤를 이어 원효는 33%정도 였다. 그 다음 스님들은 10%대에서 그 아래의 인식을 보였다. 이는 법정 스님이 불가의 수행력과 깨달음의 모습을 인정하고 인식했다기보다, 부처의 가르침을 현대인들에게 보다 쉽게 실천으로 대중에게 다가간 맑고향기롭게를 이끈 정신과 무소유 등 에세이를 통해 불교의 교리적인 접근보다는 자연스러운 부처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글에서 감명을 받은 선택이라 볼 수 있다.
이를 미국불교에서는 달라이 라마나의 <행복론>이나 틱 냑탄의 <화> 같은 책들이 혹자들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대중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불교경전>의 해석서들 보다는 엄청난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 책이 불교경전이라는 규정 속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도 읽는 독자들은 불교에 기초해서 말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교경전이나 불교에세이 책들이 각기 역할이 다르다. 그러나 불교적 소양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불교가 <불교경전>의 해석서들보다는 <무소유>나 <행복론>에 쉽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키치는 예술에서 보면 고급예술에 반대되는 예술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달픔으로 지쳐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이들에게는 그저 익숙하고 즐길 수 있는 오락적인 예술이 쉽게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고급예술은 스트레스의 풀어주기보다는 본질상 긴장의 재생산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고급예술 비평가들은 “고급예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긴장의 이완과 휴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긴장을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고급예술에 반해 통속예술은 일상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즉 고급예술이 지니는 오만함과 새로운 긴장감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통속예술은 오로지 현대인의 지친 삶을 어루만지고 보듬어 준다는 위안감이 먼저 다가온다. 그래서 쉽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쟁적 현대사회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부추긴다.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경쟁과 생산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인간에게 무엇을 위한 노동인가의 회의가 끝없는 꼬리를 물게 된다. 그래서 목마른 휴식과 힐링을 늘 갈망하고 있으면서, 특히 젊은 세대들은 재미있고 편안함을 주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모든 것을 접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물질적 부를 추구하며 부를 향유했던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오늘날에는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 ‘소확행’이란 신생어를 그들의 삶의 본질적 가치로 택하고 있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키치는 교묘하게 위장한 상태로 책, 음악 등 모든 예술, 나아가 서비스까지 스며들고 있다. 키치는 통속예술이면서 스스로 고급예술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판매되기 위해 자신에게 충실하기보다는 소비자에게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독창적이어서는 안 되고 평범해야 하며, 독창적이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항상 열어둬야만 소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 나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자리에 서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키치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통속예술은 그저 욕구의 대상으로 소유되기를 원한다. 고급예술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외골수적이라 다가가기에 부담스럽다. 그러나 키치의 특징은 욕구 대상에서 욕구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데 있다. 클래식 음악 자체보다 그 음악을 우아하게 감상하고 있는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국불교에서는 미주적 성향의 키치적 불교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불교적 전통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불교의 출발이 인간 삶의 고통에 대한 극복이자 평안을 찾아간다면, 이는 예술의 지향점과 비견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근원을 찾아가는 수행자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즉 수행자와 과학자, 예술가는 인간 본질적 존재를 깊이 관조하고 이해하는데 그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교는 서구 종교인 기독교와는 근본적 맥락이 다르고, 오히려 철학이나 예술에서 연상케 한다.
다양화를 지향하는 현대사회는 불교도 키치적 이해에서 들여다보면 하나의 선택적 상품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것이 서구사회 등 세계가 불교의 사상적 심연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명상의 다양함이 그러한 것이다. 명상은 현대사회의 스트레스 등 각종 고통에서 벋어나기 위한 손쉬운 휴식으로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키치로서 소비된다는 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무언지 모를 만족감과 허영을 제공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현대인들은 불교의 본질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별로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요소만을 가져가고 있다. 이러한 불교는 불교 본래적 모습보다 그를 감싸고 있는 여러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으로 이것이 키치불교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상이다. 
불자들은 흔히 덕담이자 서로 주고받는 기원의 진언으로 법회의식이 끝나면 “성불합시다”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새겨보면 공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제 그 말의 생명이 다했다고 본다. 성불은 곧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신과 서로의 삶에서 소소하면서 진실한 마음가짐에서 깨달음을 떠올리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불교의 타력적 힘에 의지하려는 전통적 불교신도들은 반감이 크겠지만. 현대에서 발전되고 있는 마음챙김 명상 등은 성불이나 깨달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트래스 등 현대인들의 각종 마음 아픔을 해소 또는 취유하기 위해서 충분히 활용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명상 수련이 결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명상 지도자 틱낫한의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 중에 존재의 무상함을 깨달고 그들만의 여러 목적으로 책을 구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인 성불의 길을 찾기 위한 구독자가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틱낫한의 책 《힘》에서 역설하는 명상(주의 깊음)은 불교를 강하게 집착하며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의 개념인 것이니 굳이 종교로서의 불교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최근 명상이 현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자 여러 가지 과학적 분석과 통계들이 나오고 있다. 명상의 여러 체험 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이 명상음악과 명상의 말씀이다. 이는 불교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서 ‘불교의 형식들 중 어느 것이 느낌이 좋은지?’라고 물었을 때 ‘산사에서의 청아한 염불소리’를 많이 이야기한다. 이 염불이 오랜 불교음악이다. 그러나 너무 불교적 형식의 틀을 갖추고 있어 명상음악과는 비견할 수 없으나,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최고의 기쁨인 것이고, 염불소리는 그 내용과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자체가 느긋하면서도 절제된 휴식인 것이다. 또한 산사의 템플스테이도 결코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힘든 정신과 육체를 조금이나마 편안한 휴식을 절제된 산사의 규칙 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라 본다. 이는 자신이 산속에서 영원히 안식이나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산사체험이나 여러 수행 프로그램들은 사실상 그 본래의 목적 보다는현대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사찰 휴식 서비스로 소비되고 있다. 때로는 주말여행처럼 느껴지고 있으며, 수행 프로그램은 그 목적을 단지 삶의 행복 추구의 일환 정도에 맞추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사체험과 수행이 인기를 끄는 것은 키치의 악덕이 자리 잡고 있어서이다. 즉 대상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버린다는 것이며, 그에 대한 만족감이 빠르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불교도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유발해야 되면서 실용적이어야 한다. 깊은 사색과 힘든 절제적 수행을 통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을 체험하고자 하는 참가자들도 있다. 그러나 산사의 수행같이 뭔지 모르지만 뿌듯한 삶의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련되고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은 모습인 것이다.
불교에 키치를 대입시키는 데는 본래적 키치의 부정적 효과나 거부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와 키치는 서로 손을 잡고가는 시점이고, 그것은 이미 가치의 문제를 벗어나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키치를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키치를 품으면서 그 한계점이 발견되면 넘어서야 한다. 최근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불교 명상수행에 대한 관심은 불교적 맥락을 키치적 이해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그 키치적 이해가 불러오는 관심이란 것이 중요하다. 이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이끈다면 키치불교 매력에 스며들어 마침내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에 대한 관심의 집중은 불교 내부의 에너지에서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라는 맥락에서 발생하는 키치적 이해와 관련하고 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며, 불교는 키치를 넘어서는 자리에서부터 무언가를 보여주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모든 종교의 인구수가 줄고 있는 현상이다. 젊은층의 탈종교가 자연스러울 만큼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불교는 전근대성으로 젊은층이 잘 접근하지 않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명상을 대안적 삶의 모습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다. 도심지 명상센터는 과학이자 합리적 불교를 인식시켜주며, 현대사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은 바로 역동적 불교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도 한국 불교의 원로들은 전통불교에만 안주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교를 외면하는지를 깊이 관찰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그저 전통불교에 대중들이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된다.        
     *이 글은 (계간)원효사상에 수록될 내용을 본지가 공동 개재 합니다.
사진= 숭산 스님. 미국 선센터. 미 불교 서적. 티베트 승려(원고 본문 중)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copyright ⓒ 2007 우리불교신문, 우리불교 WTV All re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16 대형빌딩 2층/ 팩스 02) 6442-1240 /

전화 02)735-2240 /  메일: woob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