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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는 아미산 기슭에 삼보의 깊은 뜻을 갖고 동화사 포교당으로 건립“

주지 지우스님, 항일 운동에 대한 스님과 불자들 발자취 찾아내
 대구광역시 시내 중심가에 터를 잡은 보현사는 아미산 기슭에 삼보의 깊은 뜻을 갖고 1920년 신해년 3월3일(불기2456년)에 당시 본사섭리 장허스님과 무 김남파 도감,변성파 장재 변용택, 회계 이청운 등이 있었고, 사주는 정공심, 이씨 청정공. 정씨 무차생, 김화수 등이 있어서 신심으로 시주를 하여 노력한 시주금과 본사 동화사 사재 부담으로 동화사 포교당으로 4칸 요사건물을 건립하여 인법당으로 사용하였다. 동년 10월23일 오전11시 본당에 좌우로 증축을 달아 15칸으로 중건 중수를 하였는데 당시 본사 주지 김남파 스님과 장재 변성파, 감설 김월재 도감, 정요은, 회계 범종등 스님들이 협력해서 처음 창건한 교당은 당시 매우 협소하여 동년 9월에 다시 뜻을 세워 본래건물 좌우에 붙여서 부속 건물을 세우니, 불전이 15칸, 법실 5칸, 향적실 5칸으로 새롭게 중수가 되었다. 제이등 당시 주지 월제 정혜스님께서 본사 직원 일동과 주변 수 말사 주지 스님들과 협력해서 감설 추월스님과 본방대가 등이 불조도월구지, 00법전추법성화가 지명구삼사 등 뜻으로 합심하여 (1919년 기미년)불기2463년 5월5일사시 (오전9시~11시에 상량하여 이루어 졌다.
 1953년(불기2499년)4월8일 대구불교청년회(현 중고등부 학생회)를 창립하였으며, 1972년(불기2518년)5월13일 대구불교청년회(현 보현사 청년회 창립법회를 봉행 하였다.
 1989년(불기2533년) 10월26일, 새벽 2시경 10,27 법란을 하루 앞두고, 선방채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을 하여  당시 목조건물이었던 대웅전까지 완전히 전소가 되었다.
 이후 1994년(2538년) 새롭게 대웅전을 신축하고 포교를 위해 신도회발족과 여러 분야별 신행단체들을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100여년 이란 짧고도 긴 세월동안 수많은 스님들이 보현사 포교당을 거쳐 같으며, 1992년(불기2536년) 4월10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대구.경북 팔공승가회 부설 대구.경북불교대학을 설립하여 당시 36학번 320명이 입학을 하여 불교 공부를 시작하였다. 1년 뒤 대구불교대학으로 명칭을 변경 하여  보현사 신관에서 매주 불교대학 수업을 진행 해 오면서 현제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대구 시내에 위치한 보현사는 지금까지 불교의 터전을 일구며 팔공총림 동화사 직할 포교당으로써의 그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 오고 있다. 
 현재 지하1층에는 대구불교대학과 문화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1층에는 종무소와 공양간, 휴게실이 준비되어 신도들을 맞이하고 있다. 2층에는 대웅전 법당과 3층에는 천불전 법당이 새롭게 조성이 되어 신도들이 언제나 참배가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고령자들을 대비해 책상과 의자들을 양 쪽 옆으로 준비를 하여 앉아서 편안하게 법회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보현사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시민 선방이 함께 운영 되고 있으며, 매일 이어지는 새벽 예불과 함께 게으름이 없이 수행정진을 해오고 있다.
 2019년 6월26일 주지로 부임한 지우 스님은 진제 종정 예하 진제 스님의 상좌스님으로 스님은 포교당으로써의 어렵고 힘든 역할을 통해 보현사 신도들의 신심을 증가 시키며,  초하루 등 각종 법회를 신도들과의 소통의장으로 발전 시켜 나가고 있다. 그리고 분기별 진행 하고 있는 참선 법회와 성지순례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어려운 군 법당이나 사찰들을 방문하여 조금씩 모아온 보시금을 전달하는 등 각종 후원을 통해 자비나눔을 몸소 실천해 왔다. 
 그리고 보현사 어린이 법회를 통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 주며, 미래의 부처님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특히 지우스님은 2019년 12월26일 보현사 건물 외벽에 조성된 “보현사 스토리보드” 제막식을 통해 그동안 잊혀 져 왔던 항일 운동에 대한 스님과 불자들의 발자취를 찾아내었다.
 100주년을 맞는 3.1절을 앞두고 보현사에서 일제시대 불교계 독립 운동의 청년 학인스님들이 일제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준비했던 당시 대구 보현사를 상세하게 조사 발굴을 하였다.
 1919년 3월 30일 대구 덕산정 시장, 지금의 염매시장에서 장날을 맞아 모여든 2천여 명의 군중들이 외치는 ‘대한독립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한동안 만세운동이 일어나지 않아 방심하고 있던 일본 경찰은 긴급히 현장에 출동해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동자 10명을 체포했다.  일제에 붙잡힌 주동자들은 모두 청년 학인스님들. 1명은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학림, 나머지 9명은 동화사 지방학림에서 공부하던 스님들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동화사 포교당인 대구 보현사의 승려 열명이 구한국 국기를 들고 만세를 불러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학인 스님들이 만세운동 전날 모인 곳이 바로 염매시장 인근의 보현사였다. 스님들은 보현사에서 이튿날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를 만들면서 결의를 다졌다.“1919년 3월 30일 동화사 스님 열분이 보현사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해서 일본 판사에 의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했던 곳이 바로 팔공총림 동화사 직할 포교당인 아미산 보현사다.
 당시 권청학, 김문옥, 김윤섭, 김종만, 박창호, 윤학조, 이기윤, 이보식, 이성근, 허선일.일제 판결문 기록으로 확인된 학인스님 10명이며 법명이 없이 속명만 남아있다.이를 토대로 옥고를 치른 학인 스님 가운데 3명은 해방 이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으며 공훈을 인정받았고, 불교계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같은 학인스님들의 독립운동 정신이 서린 보현사를 현창하는 사업에 본격 나서게 되었다. 먼저 대구시 중구청과 함께 보현사에 일주문과 담장을 새로 설치하고 스님들이 만세운동을 하는 장면을 담은 벽화를 조성하였고,또 내년에는 대구시의 예산을 지원받아 만세운동 기념비를 보현사에 건립하기로 하였다.이와 함께 3.1만세운동을 주도했지만 아직까지 훈장을 받지 못한 7명의 학인스님들에 대해서도 훈장 추서를 추진할 계획이다.
 
보현사 주지 지우스님은 지난해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앞으로 대구 보현사의 역사적 의미를 후세에 고스란히 전할 수 있도록 불교계와 지자체가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며, 여기에 보현사가 3.1만세운동의 뜻깊은 유적지로 계승 발전해 나가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며, 230만 대구시민과 전국의 불자들이 각별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보현사는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로 사태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이 되면서 각종 법회를 자제 해 왔으며, 앞으로도 종단의 방침에 따라 모든 행사를 축소해서 법회를 진행 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에 위치한 각 사찰에서도 운영에 어려움이 많지만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보현사는 사람들의 왕래가 지극히 적은 관계로 그 여파를 고스란히 접하고 있다.  
지우 스님은 현제 대구불교대학 부학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면서 대구지역 불교발전에도 남다른 노력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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