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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순례6> 깨달음을 얻으신 부다가야


사르나트에서 다시 바라나시로 나왔다.
기차를 타고 부다가야로 향하기 위해서다.
바라나시역에서 가는 기차는 많지 않다. 그런데 웬걸 말로 만 듣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잠깐사이에 다른 플렛폼에서 가야행 오전 10시 20분 기차가 출발해버렸다는 것이다.
인도열차는 시간도 고무줄이고 플렛폼도 마음대로 들어왔다가 가버린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기도 어렵다.
오후 4시경에 다시 기차가 있다고 한다. 하늘이 노래진다.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마땅하게 타고갈 버스도 없고 해서 환전도 할 겸 바라나시 시내를 배회했다. 치약칫솔도 구입하고, 아이쇼핑을 한뒤 거리에서 점심도 해결했다. 참 시내 어디를 가나 소가 많다. 당연히 똥도 많다.
골목 안에 있는 환전소에 들어갔다. 환전을 하고 나니 천을 권한다. 그 유명한 바라나시 비단이다. 부처님이 왕자시절을 묘사하는 문헌에 따르면 카시(Kasi:빛나다는 뜻으로 원래 바라나시의 이름이다)비단으로 만든 옷만을 입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옛날부터 바라나시는 전통의 비단 산업을 위주로 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선물로 줄 비단 스카프를 몇 개 사고야 말았다.
점심공양도 하고 한참을 배회한 끝에 오후 4시 다시 바라나시역 플렛폼에서 다시 기차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차는 계속 연착이다.
그렇게 시작한 기차가 저녁 7시에 출발했다. 처음타는 기차라 체험도 해볼겸 보통사람들이 타는 자유석을 예매했는데 그것이 잘못이었다. 나무의자에 바람은 송송들어오고 사람은 많아서 서있기도 곤란하고, 그나마 앉을 좌석도 없다. 도저히 타고 갈수가 없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칸으로 이동해 한참을 메뚜기처럼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닌 끝에 좌석을 구했는데 어린아이들을 둔 가족이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의 눈망울을 보니 차라리 서서 가는 것이 나을 듯하다.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 하고 새벽 2시경 가야에 도착했다.
가야에서 부다가야 가는 길이 워낙 치안이 불안하다고 해서 밖에 나가지 않고 역 리타이어룸에 들어가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새벽 5시경 200루피를 주고 부다가야행 오토릭샤에 올랐다.
부다가야로 가는 길옆으로 부처님이 6년에 걸친 고행으로 쇠잔해진 몸으로 목욕을 했다는 나이란자나강(니련선하)이 펼쳐져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강이다. 또 그 너머로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기 전에 올랐다는 전정각산(前正覺山)이 길게 자리잡고 있다.
부처님께 우유죽을 공양했던 수자타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사람들이 물을 기르는 강가에 야생 멧돼지가 환가롭게 노닐고 있다.
부다가야에 도착하니 티베트 스님들과 신도들 천지다. 간단하게 짜이와 인도음식으로 아침요기를 한 다음 부처님이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으로 들어가니 마하보드 대탑이 우뚝 솟아 있다.
먼저 마하보드 대탑 뒤로 향했다. 많은 참배객들이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고 또 절수행을 하고 있다.
큰 보리수 나무아래 모셔진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잠깐 참선에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우유죽을 드시고 홀로 숲 속으로 들어가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여기야말로 정진하기에 좋은 곳이다.'라고 흡족해 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 자리에서 육신이 다 죽어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實相)을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다짐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평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깊은 명상에 잠겼으며 7일째 되던 날 새벽에 나이란자나강 저 너머로 먼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온갖 집착과 고뇌를 잃어버렸으며, 우주가 자신이고 스스로가 우주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하보디사원(대보리사)은 부처님 성도 후 250년이 지나 아쇼카왕이 보리수 나무 동편 금강좌 위에 4개의 석주에 닷집이 얹혀 있는 모습으로 금강좌 사원을 건립하고 승원 및 보리수 주위에 돌담을 조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슬람교도들이 무차별적으로 불교사찰을 파괴할 당시 군인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파괴를 막기 위해 흙 속에 묻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84년 발굴 복원된 것이다.
현재 높이 52미터 9층으로 건축된 마하보디대탑의 내부에는 부처님의 좌불이 안치되어 있고, 보리수와 금강좌가 있다.
마하보드사원을 나와 부다가야 박물관에 들렸다. 카메라 지참을 철저히 막는다. 들어가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 없이 일부러 훼손한 부처님의 모습뿐이다.
상처난 부처님 석상을 손으로 만져보니 착찹해지고 울분도 솟는 등 만감이 교차한다.
약 4km 근방에 고려사라는 한국 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牛車(우거)를 탓다. 건물도 단층 시멘트 건물이다보니 잘 찾기가 힘들다. 부처님전에 삼배를 드린 다음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으니 목탁소리에 놀란 인도인 관리자인 아마르씨가 급히 뛰어왔다. 한국말도 잘하고 구룡사 초청으로 한국에도 2번이나 왔다갔다고 한다.
스님은 한국에 가셨다고 하며 2주후에 오신다고 한다.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컵라면을 비롯한 몇 가지 선물을 주고 발길을 돌리려니 마음이 아프다. 아마르씨가 한국인들이 보드가야를 와도 고려사에는 들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하룻밤 쉬었다 가라고 잡는다. 하룻밤 같이 지내면 좋으련만 일정이 빡빡하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인도 부다가야= 김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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