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사찰탐방) 청도 호거산(虎踞山) 대비사(大悲寺)

신라시대 창건...지연스님 가람재정비 사격갖춰
 
대비사(大悲寺)는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795번지 호거산(虎踞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호거산은 운문산(雲門山)이라고도 하는데, 이 산을 사이에 두고 운문사와 떨어져 있다. 
 657년(신라 진흥왕 28)에 창건이 되었는데 창건주의 이름은 알 수 없고 단지 한 “신승(神僧)” 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창건 당시에는 서작갑사(小鵲岬寺)라고 하였다.
 창건 실화를 보면 557년 한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와 현재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고하였다. 3년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산과 계곡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들이 놀라 울었다. 신승은 이 때 이 산에 오령(五靈)이 살고 있음을
알고 7년에 걸쳐 5개의 사찰을 지었으며, 산 중앙에는 대작갑사(大鵲岬寺), 동쪽에는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는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는 소작갑사, 북쪽에는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던 것이다. 이 중 대작갑사가 지금의 운문사(雲門寺)이다.
 그 뒤 600년(진평왕 22) 원광(圓光)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바꿨으며,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이 쟁패할 때 다른 4개 사찰과 함께 불에 탔다.
 일설에는 신라의 왕실에 이름이 대비(大悲)라는 왕비가 있었는데 수양차 이 절에 와서 지냈기 때문에 절 이름을 서작갑사에서 대비갑사로 바꾸었다는 말도 전한다.
 고려에 와서는 인종(仁宗, 재위 1123~1149) 때 운문사에 주석하였던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 1052~1144) 스님이 대비사를 중창하였다고 한다. 본래는 박곡리 마을 내에 있었으나 학일 스님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연혁은 그다지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1677(숙종 3) 에 서문중(俆文重)이 쓴 청도의 군지 오산지(鰲山誌), 「경내 사찰」조에 “대비갑사”는 작은 사찰인데 동매전(東買田)의 남쪽 골짜기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어 당시 소규모로나마 법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799(정조 22)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도 “대비사는 청도군 동쪽으로 80리에 있다.“ 라는 문헌 자료 외에 유뮬 자료로 살펴본다면, 대웅전 불단 내부에,“강희 24년에 대웅전의 불탁(佛卓)을 수리하고 이듬해에 법당을 단청하였다.” 는 내용의 묵서가 적혀 있어서 1685년(숙종 11)에 대웅전을 중건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내에서 발견된 명문와편에 1692년에 해당하는 연호와 천담(天談) 비구라는 이름이 보이므로 이 때 어떤 건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수 내지는 중건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아마도 이 무렵의 일이겠는데, 현재 대웅전과 내부에 봉안된 석조 여래좌상이 양식상 17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므로 명문와편과 더불어 이 때의 중건 사실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절 입구에 부도밭이 있어 대비사에 관련 있었던 스님들의 부도기와 부도비가 모아져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 대비사에 어떠한 스님들이 머무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어 연혁의 일단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절 입구에 모셔져 있던 부도밭을 사찰(內)에 새롭게 터를 잡아 부도 16기와 부도비 6기를 조성하여 모셔져 있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한 바 있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자 응교(應敎) 스님이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대비갑사에서 언제 지금처럼 대비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1960년대에는 대웅전 동종을 조성하였고, 1996년에 삼성각을 조성하였고, 당시 산내암자로 도솔암과 옥련암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1985년 보물제8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로, 16세기에 지은 건물로 추정되며, 건축 구조를 살펴보면, 잡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기둥 사이에 설치하여 지붕을 받도록 구성된 공포(栱包)의 구조가 건실하여 그 간격이 정연하다.
 대웅전 법당 안에는 17세기에 조성한 석가여래좌상(石迦如來坐像)과 1686년(숙종 12)에 조성된 영산회상도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다양한 도상, 본존을 비롯한 권속들의 짜임새있는 구성과 안정된 화면구도, 단정하고 온화한 안면 묘사, 적 녹색 위주의 조화로운 색채, 장식성이 강한 채운 표현 등을 통해 높은 화격을 갖춘 주불전(대웅전)의 후불탱화라 할 수 있다. 2017년 12월에 보물 제1957호로 등록이 되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대비사는 1988년 7월에 전통사찰로 지정이 되었으며, 또한 박곡리에 보물 제203호로도 지정이 되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2012년 대비사와 인연을 맺은 주지 지연(智然) 스님은 당시 울퉁불퉁한 산길을 보수하여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와 주차장을 공사하였고,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던 가람의 규모를 스님의 원력으로 다시 가람을 재정비하여 무너져 가는 축대를 조성하였으며,삼성각과 향로전, 그리고 대웅전을 마주보고 있는 누각(15평)과 종무소, 요사채, 공양간, 해우소 등 수 많은 불사를 통해 전통사찰로서의 그 사격을 갖추어 오고 있다.
“특히” 대비선원은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선방으로 15평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현판은 종정 예하 스님의 친필을 하사 받아 앞으로 선방으로써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주지 지연 스님은 진제 종정 스님의 상좌로 28안거를 성만 하였으며, 그동안 대비사는 중창 불사를 통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뜻하지 않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찾아오는 신도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조차도 발길이 뚝 끊긴지가 오래다, 지금도 몇몇 불사가 진행중이지만 주지 스님은 이것 또한 즐거운 고통이라며 대비사의 신도들과 함께 “게으름 없이 꾸준하게 정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copyright ⓒ 2007 우리불교신문, 우리불교 WTV All re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16 대형빌딩 2층/ 팩스 02) 6442-1240 /

전화 02)735-2240 /  메일: woob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