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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순례)3 -바라나시 화장터

 

 

(인도순례)3 -바라나시 화장터
곡소리 하나 없이 마치 한가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화장터

“헤헤 헤헤헤 헤헥 헤헤헤~”
원숭이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창문을 여니 갠지즈강에 동이 트고 있다.
세수를 대충하고 강가의 가트(강가의 계단)로 향했다.
한쪽에서는 목욕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소녀가 위에 든 기름끼를 걷어낸 뒤 먹을 물을 깃고 있다. 갑자기 우유죽을 공양했던 수자타 소녀가 오버랩 된다.
한참동안 가트에 앉아 주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갠지즈강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북한산 노적사 종후 스님과 조계종 전 호법부장 종수 스님이 신도들과 성지순례를 와서 배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종수 스님은 가트 가까이에 와서 “아니 기자가 근무안하고 여기에서 뭐하냐”고 말씀하신다. 스님과 잠깐 얘기를 하다보니 한국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참 흔치않은 상황이다.
잠시 후 가트 옆을 돌아가니 그 유명한 바라나시 화장터가 보인다. 나무를 사고, 시체를 들쳐메 옮기고, 불씨를 피우고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어선지 화장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관계자가 손사레를 치며 사진찍는 것과 접근도 막았다.
더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기에는 배를 타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일단 강건너로 가서 짜이와 튀김으로 요기를 한 뒤 바라나시의 가트를 한번 둘러봤다. 온몸에 온통 컬러색으로 치장을 한 힌두교 성직자인 비바사두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반갑게 대한다. 사람들은 서로 몰려들어 돈을 내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추며 경배를 올렸다.
다시 배를 타고 화장터로 들어왔다.
이곳의 규칙은 절대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는 것. 힌두교인들은 아직도 사진기의 플래시와 영혼의 상관관계를 믿는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화장을 하는 모습을 찍으면 영혼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한쪽에 앉아 있다가 장작더미 위에 수의로 감싼 망자가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화장터 가까이로 갔다. 이곳 화장터는 규모도 크고 오래되어 화장 운구가 줄지어 있다.
바라나시 화장터. 곡소리 하나 없이 마치 한가로운 일상처럼 보인다.
갑자기 각묵 스님의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아난다야 태어난자가 죽는 것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람이 죽을때마다 여래에게 다가와 이런 뜻을 묻는다면 이것은 여래에게 성가신 일(?)이다.’이라고 말했던 부처님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는 상당히 웃음이 나왔는데 지금은 숙연하게 느껴진다.
불교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생사일여(生死一如)’ ‘생사즉 열반(生死卽 涅槃)’라고 한다. 살고 죽는 일이 다르지 않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의식과정인 다비(茶毘)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여는 의식인 것이다. 미혹의 근저에 있는 무명의 티끌을 불살라 버리고, 끊임없이 정진하여 번뇌를 끊고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수행의 도정일까.
그래서 고통도 슬픔도 무의미한 것일까. 다비는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가 함께 나누는 무언의 교감일까.
화장터에서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웃고, 고통과 슬픔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공한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니 즐거움만 있는 것일까.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특히 화장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목욕을 하고 심지어는 그 물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바라나시= 김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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