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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받드는 것 1

(이대흠시인 문학속불교)사랑은 받드는 것 1
산화공덕
창에 걸어놓은 풍경이 운다. 오래 전 저 풍경소리처럼 마음이 맑은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뒤로, 줄곧 나와 함께 해온 물건이다. 허공에 물고기를 달 생각을 하다니, 우리에게는 익숙한 문화이지만, 이런 것은 시적인 발상과 닿아 있다.
시를 쓰는 일은, 아무도 허공에 물고기를 달지 않았을 때, 맨 처음 물고기를 다는 행위와 유사하다. 시인은 대개 오랜 관찰과 응시, 직관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연다. 물론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은 우주 자체이기 때문에, 그는 고행하는 부처의 모습과 닮았다. 견성에 이르기 전의 부처.
불교가 우리 문화와 관계를 가진 게 천 년 전인지 2천 년 전인지 알 수는 없다. 혹자는 소수림왕 때 불교가 전파 되었다하고, 다른 이는 미라난타에 의해 남방 불교가 먼저 전해졌다고 한다.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의 아홉 아들 중 일곱 명이 불가에 입문하였다하여, 칠불암을 근거로 들고 나오는 이도 있다. 최근에는 <석보상절>과 <동문선>에 근거해 장흥 탑산사가 최초의 불교 도래지(BC83년)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불교가 언제 도래했는지는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불교적인 색채가 천연의 어떤 것으로 내장되어왔다. 한국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진달래꽃’에 불교의 정서가 배어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진달래꽃은 시작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것이 역겹다’며 떠난다는데, 시적 화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담담히 보내준다. 애정이 식은 것도 아닌데, 이 정도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울고불고 싸우고 가벼이 헤어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이별 방식 아니던가. 이에 비해 ‘진달래꽃’의 시적 화자에게서는 어떤 경지까지가 느껴진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단순히 이성간의 사랑이라면, 이 정도의 경지를 노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역겨워 하며 떠나는 임에게 꽃을 뿌려 앞날을 축복해 주다니!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을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즈려 밟는’다는 역설도 대단하지만, 상대에 대하여 극존칭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진달래 꽃’의 시적 화자가 보내는 임은 대등한 관계의 상대가 아니다. 화자는 떠나는 임을 극존칭 어법으로 축복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붙잡고 싶지만 보내면서 축복을 해 줄 수 있는 사랑, 그 사랑은 높아서 종교적이다.
진달래꽃에서 엿볼 수 있는 산화공덕 의식은 불교의 전래가 오래된 만큼이나 그 연원이 깊다. 경덕왕 때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나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경덕왕은 당시의 대단한 향가 작가였던 월명사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 노래가 ‘미륵보살의 노래’로도 칭해지는 ‘도솔가’이다.
오늘 여기에 산화공덕 드리는 노래 부르니
뿌린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을 받들어
미륵좌주 모셔라.
통일 신라 때는 우리의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불국사와 석굴암뿐만 아니라, 경주 남산의 수많은 석불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래서 우리의 고대가요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향가에는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그 중 산화공덕과 관련된 것이 또 있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 부인이 절벽 위에 있는 꽃을 원했다. 모두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했는데, 지나가던 노옹이 나서 꽃을 꺾어다 바치고 노래를 하였다.
짙붉은 바위 아래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받잡으리다.
노래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가능하다. 꽃을 탐하는 여심과 그 마음을 탐하는 마음. 또 노인을 신으로 보고, 수로부인을 무당으로 보는 것. 거기에 깔린 의식은 불교의 산화공덕이다. 위험한 절벽을 올라 꺾어온 꽃을 수로부인에게 바치는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하지만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는 이런 정신을 보기가 어렵다. 산화공덕의 마음, 항상 신발을 받들고 있는 섬돌 같은 마음. 이런 마음을 담은 사랑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행여 이 시대의 사랑이 너무 가볍고 거칠어진 것에 대한 증거가 아닐는지. 언제 어느 때고 사랑만큼 숭고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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