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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誤)에서 맞음(正)으로 회통하는 불교생태사상-6

4) 동일 기준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준거의 틀을 경제에 두고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미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시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보고 일관성 있게 보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생태운동을 하는 이들도 자본주의적 가치기준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생태의 보존과 개발이 갖는 경제 가치를 비교하는 정확성을 지녀야 한다.

“새로써 새를 길러 숲 속의 즐거움에 내맡겨두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를 알아 강호의 즐거움을 제멋대로 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한 물건이라도 있어야 할 곳을 잃지 않게 하고, 이 모든 것이 제각기 마땅함을 얻도록 해야 한다.”

는 고려 이자현의 말은 참으로 오늘날 개발을 통해 얻는 경제 가치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지도자나 기업인들이 명심해야 할 덕목이라 할 있다.

  생태보전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살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생태를 보전하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내 자신의 생태를 위협하는 방법론을 쓰는 것이 과연 생태적으로 옳은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태보전의 중요성을 비경제적 가치로 표현하는 일이다.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로서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경제적 가치를 반드시 논의의 표면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잘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동일가치로 다른 개념을 분석해서 그 값을 비교해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것과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 자연생태를 보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지를 총량으로 비교해서 생태를 보전하는 것이 부가가치가 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시대에서도 보다 나은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생태를 보전해야만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나의 몸 생태와 정신생태를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생태보호의 경제가치가 개발의 경제가치보다 낫다는 것을 표현하는 기준을 같게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비교도 가능하고 논리적인 모순이 없이 활동할 수 있다.

  5) 생태주의 실천- 내 몸이니 아끼고 사랑하자

  생태를 생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사람과 단체, 사회, 국가를 슬기롭다고 할 것이다. 슬기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슬기로운 이는 자신(남, 자신과 남)을 해치려 하지 않으며, 자신(남, 자신과 남)을 위하여 이익 되게 하는 마음을 낸다. 이와 같은 사람을 위대한 이라고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이와 같은 논리에 의해서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 불자로서의 삶을 계(戒, sila)라고 한다. 승려와 신도 할 것 없이 모든 불자가 지녀야 할 첫 번째 계가 바로 생태에 위험을 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을 죽이지 말라(不殺生戒)는 계라고 한다. 불자의 행동 지침인 계에는 이 외에도 모두 생태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과 말과 행동을 담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생태와 스스로를 포함한 전생태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불자 모두 지켜야 할 5계, 예비스님인 사미가 지켜야 할 10계, 정식 스님인 비구(男)가 지켜야 하는 250계, 정식 스님인 비구니(女)가 지키는 348계, 대승의 보살도를 서원한 불자가 지녀야 하는 보살 10중 48경계 모두가 그렇다. 보기를 들면 물속의 벌레를 해롭게 하지 않고 물속의 벌레나 이물질로 인해 나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반드시 물주머니를 사용하라, 물, 풀 등을 조심히 다루라고 하는 등 어떤 것은 속으로 품고 있는 의미가 그런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생태보호의 실천은 어떤 결과를 불러온다고 생각할까?

“모든 생명체는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보전하기 원한다. 모든 건전한 활동은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계율을 지키지 않고 야만적 본능을 따라 나쁜 짓을 하면 자신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진다.”

『디가 니까야』의「차카바티시하난다 숫따」에서 말하는 내용은 그대로 생태주의 삶의 표본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평화롭고 행복하며 삶의 질이 올라가고 따라서 수명도 길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생명체가 삶을 보전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만의 삶을 보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를 제외한 존재들의 삶만을 보전하는 것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자체를 보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다만 생태운동을 하면서 운동의 한 방법으로 나와 우리의 생태를 잠시 평화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생태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다른 이를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이를 보호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라고 한『쌍윳따 니까야』의 가르침은 그런 점에서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숫따 니파타』의「메타숫따」의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나와 생태를 평화롭게 하는 것은 바로 가장 고귀한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존재(생명체)는 태어나야 할 것들이고 행복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가 일생 자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듯이 모든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수양해야 한다. 무한한 자비심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증오와 적개심 없이 온 누리에 펼쳐야 한다. 서 있든, 앉아 있든 ,누워 있든 그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이것을 마음속에 두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고귀한 삶인 것이다.

 이렇게「메타숫따」즉「자비경」에서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용관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럴 때는 ‘꿀벌과 나비가 꽃의 향과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꿀을 모으듯이’해야 한다고『시갈로바다 숫따』에서 말하고 있다. 애벌레가 앞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인 것처럼 나와 생태가 하나인 상태에서의 활용은 서로 도와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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