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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너도 나그네 나도 나그네(13)

종권다툼을 정치집단보다도 더 정치적이고, 어떤 세속단체보다도 더 세속적이고, 심지어 어떤 불법 폭력집단보다도 더 불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뼈를 깎는 반성과 참회가 필요하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좀더 나은 삶에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각에서는 외려 사회에서보다 더 타락된 면을 보이는데 대해서 정말 이런 식으로 가다간 우리 불교계의 앞날이 정말 어둡다. 비린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셋째, 종단 사찰이 종교계 사회적 기업 경향을 띄어서는 안 된다. 깨달음, 믿음, 수도, 수행은 돈이 되어서도 안 된다. 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손 내미는 불교,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불교. 지역과 협력·공생하는 불교.
양적 성장에 매달리는 바람에 오히려 퇴조의 길을 걷고 있는 불교의 현재는 적잖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멀어짐으로써 불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되고 말았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중생 속으로, 라는 모토를 통해 인식전환을 하고 터닝 포인트로 삼아 다시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할 것이다.
모래를 끓여 밥을 짓겠다고 하는 부패집단이어서는 안 된다. 폭력집단 도박 비리집단이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와 같은 무대뽀식 돌파. 정면으로 돌격 앞으로는 전법(傳法)도 도생(度生)도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법으로 일제 식민지불교 잔재의 청산, 교단운영체계상의 구조적 모순 개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교단의 자주성 확보와 어용적 체질 극복, 세속화의 극복과 청정승가의 구현, 파벌싸움 지양과 화합승가의 구성, 현대적 교학체계와 수행방법의 계발 등 추구를 해야 한다.
해인은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산승 지효, 라는 글을 보고 ‘아’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스님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순수한 아마츄어였다. 베껴 쓴, 부분 같은 것도 있었고,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었다.
해인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산비알 농장 밭의 풀을 뽑다 아뜩함에 허리를 펴고 멈춰 섰다. 어지럽다. 꿈꾸듯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몽롱해지고 헛구역질이 났으며 다리가 스르르 풀렸다. 결국 무너지듯 해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봄날이지만 세상을 다 녹여버릴 듯 여름날 보다 더 뜨거운 날이었다.
죽는구나. 이게 바로 죽는 거구나. 훅 하고 풀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어 속이 메슥거렸고 울렁거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 둘로 겹쳐보였다. 가끔 그렇게 세상이 가늠되지 않았다. 이러다 말겠지, 한 게 벌써 오래 전이다.
“해인아.”
“…….”
“……또야?”
“……응.”
옆에 일하던 철민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해인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천천히 그리고 이내 숨이 빨라졌다. 철민이 무아경에 빠진 듯 눈이 돌아간 해인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몸을 똑바로 눕혔다. 아이들은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니다. 해인은 입에 게거품은 물지 않았다. 눈꺼풀이 가볍게 깜박이다가 살살 몸을 떨 뿐이었다. 경련발작이다. 멍해지면서 일시적으로 의식을 상실해 가면서 바보백치가 되어간다. 그렇게 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온몸이 뻣뻣하게 되고, 온몸을 격심하게 떠는 전신 대발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님 오면, 스님 오시믄 내가 몰래 얘기할 게. 나가서 치료받아보자고.”
 “…….”
동호의 후원자는 신부님이었고 해인의 후원자는 무심천 다리에서 만난 지효스님이었다. 그러나 처음 다리에서 만나고 후원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원감에게 들었을 뿐 이후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철민과 철민의 동생 선희, 그리고 태수는 지정후원자가 없었다. 부모가 있지만 이혼하고 양육하지 못하는 경우, 어머니 아버지가 없는 고아, 미아, 기아의 아이들, 불행한 꼬맹이들이 모여 사는 고아원. 얼마 전에는 고아원이라 칭했지만 불리우는 어감상 고아원 보다는 보호하고 육성한다는 어감이 부드러워 요즘은 보육원이라 불렸다. 그렇게 불행의 낙인이 찍힌 사십 여명의 아이들이 부대끼며 사는 희망보육원의 토요일 저녁답이었다.
“나쁜 새끼들.”
“…….”
해인은 수음을 한 듯 몽롱했다. 태수와 동호가 달려오고 철민의 동생 선희가 왔다.
“오으빠.”
 발달장애를 앓는 선희는 자기 친오빠인 철민보다 해인을 더 따랐다.
“…….”
“괴, 괜찮아?”
“너나 나나 우린 왜 이리 덜 떨어진 거니……?!”
“……오으빠.”
 해인은 쓸쓸하게 말했다. 그러나 으으, 하는 뻣뻣해지는 몸에서 신음소리 뿐 말은 입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하늘엔 핏빛 노을이 흐르다 멈추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할머니가 죽고 보육원에 넘겨진 이후 부터였다. 이유도 원인도 없었다. 특히 누군가에게 맞고 난 이후 삼사흘이 지나면 어김없이 가끔 찾아오는 증상이었다.
그때 최상택이 나타났다. 천지사방으로 핏빛 노을이 번져갔다. 가슴이 쿵쿵거렸다. 작달막한 키에 검은 색안경을 끼고 손에는 말채칙 같은 지휘봉을 손에 든 채였다. 최원감은 원장의 사촌 동생이었다. 원장이 한 달에 한두번 오지만, 원장의 일을 맡아하는 건 최원감이었다. 쓰러져 개발작을 하는 해인을 보고 최원감의 얼굴이 벌레를 씹은 듯 일그러졌다.
“너희들은 쓰레기야, 쓰레기. 바닥에 나뒹굴어야 하는 인간쓰레기라고. 이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불량인간들. 니들이 들이쉬는 숨, 내뱉는 숨에는 역겨운 냄새가 나. 더러운 피들아.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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