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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는 다신전에 있다(1)

<초의 스님>

초의는 다신전에 있다

《동다송》은 초의 스님의 다시(茶詩)이다. 정조 임금의 사위였던 홍현주가 진도 부사 변지화에게 차에 대해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되어 68구로 된 장시(長詩)를 지었다. 홍현주가 차에 대해 묻지 않았다면 동다송은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홍현주에게 시를 지어 올릴 때에는 《동다행》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동다송이라고 했다. 동다송은 68구로 이루어졌지만 협주가 많다. 차의 설명, 정보 차원의 협주는 당대의 육우 《다경(茶經)》과 모문석의 《만보전서》를 베껴 제목을 바꿔 단 《다신전(茶神傳)》과 육정찬이 지은 《속다경(續茶經)》의 내용이다. 어쩌면 시구를 먼저 생각했다기보다 3종류의 책 내용으로 시구를 지었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른다.

초의는 실학자인 정약용의 유배 시절 인연으로 사대부들과도 교류하게 되었다. 그 인맥과 학문, 자신의 문학적 재능 등이 어우러져 알려졌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결정적 매개체는 차(茶)였다.

중국에서 차를 구해다 먹는 것이 어려운 사대부의 차를 초의가 공급했다. 차로 추사 김정희 등 문사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치렀고, 급부상한 차박사 명성이 부마 홍현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동다송의 탄생 계기가 되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동다송은 세 종류의 책에서 인용된 내용이다. 따라서 동다송을 두고 창의성이 있냐 없냐 하는 거론은 의미가 없다.

초의는 차에 대한 홍현주의 물음에 대답을 하기 위해 시구를 활용하여 목적에 충실했다. 차 전문서적 하나 없는 상태에서 중국의 다서들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음은 초의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동다송이 초의의 차에 대한 사상이나 인식 척도를 나타낸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은 동다송에서 초의의 차의 철학을,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차 철학의 근원으로 동다송의 ‘중정(中正)’을 든다. 누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열망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은 사실도 진실도 아니다.

동다송의 중정은 《다신전》〈화후(火候)〉와 〈포법(泡法)〉조항에 이미 나타나 있다. 다신전은 초의가 1828년(43세)에 지리산 칠 불 선원에서 《만보전서》〈채다론(採茶論)〉을 베끼기 시작하여 1830년(45세)에 다신전이라는 제목을 달아 완성했다고 밝혔다.

동다송은 그로부터 훨씬 이후 1837년(51세)에 완성했다. 모환문(毛煥文)이 쓴 만보전서 채다론은 명나라 장원(張源)이 1595년경에 저술한 《다록(茶錄)》을 필사한 것이다. 따라서 초의가 베낀 다신전의 최종 원본은 장원의 다록이다. 다록의 ‘중정’은 또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을 이어받았다.

중정은 육우의 차 정신

필자는 《육우 다경(陸羽茶經)》〈四. 茶之器(차의 그릇)〉에서 육우 차 정신의 백미를 수중(守中: 중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 ‘중정’이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 초의의 동다송에 영향을 주어 인용되었을까?

중정은 간단히 말해, 음식을 만들 때 너무 짜지 않고 너무 맵지 않고 ‘알맞게’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육우의 다경 이래 많은 다서에 너도 나도 흔히 쓰는 용어가 되었다. 초의의 대표적인 시 동다송에서도 인용될 정도다. 그러나 그것을 초의의 흔적(세상 사람들이 사상이라고 하는 것인데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생각’이라고 해두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초의의 생각’ 즉 거창하게 말해 사상이나 차의 철학이 다신전에 있음을 필자의 졸작 동다송에 밝혔다. 만보전서를 베낀 다신전에 초의의 차에 대한 인식과 갈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 번이라도 주의 깊게 읽었다면 초의의 차 사상이 중정이라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주장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사상의 깊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초의는 분명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찮을지 몰라도 그 확인을 쉽게 볼 일은 아니다. 그의 분명한 생각을 확인한 일은 차 역사의 대표적 인물이 된 초의의 차 인식 척도를 가늠하는 잣대이어서다. 허위 사실에 매몰된 초의보다 인간적인 초의를 발견해서 되레 반갑다. 그의 본모습을 제대로 평가받을 만한 시점이다.

차에 대한 그의 생각이 여실히 나타난 곳은 중정이라는 인용구가 아니라 '다신전이라는 제목'이다. 초의가 만보전서 채다론을 베끼면서 《다신전》으로 왜 제목을 바꿔달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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