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무명을 벗고 진정한 자아를 찾자

우리는 누구도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잉태되는 순간부터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을 시작한다.생명의 불꽃이 꺼지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육신이 썩은 흙은 다시 식물에 흡수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그열매는 다시 동물들의 허기를 채워 주는 양식이 된다. 형상을 바꾸어 돌고 도는 모든 변화하는 존재의 불꽃은 이와 같이 명멸하여 생과 멸을 반복한다.
태초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사실없다. 시간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추상적인 개념일 뿐 본래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시계를 만든 것도 아니요, 연대를 만든 것도 아니다. 시간은 고정되어 있으며 불변한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태초고 과거며 현재이자 미래다. 만일 시간이 변하고 흐르는 것이라면 분명히 시간은 유한할 것이다. 또, 시간이 정말로 변한다면, 변하고 변해서 언젠가는 진달래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시계 초침은 계속 째깍째깍 가고 있고,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을 몇 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는다고 표현 하지만, 이러한 시간 개념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창출한 것일 뿐, 시간은 본래 시작도 끝도 없다. 단지 사람이 시간이란 판, 또는 공간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나올 뿐이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미래를 에언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공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일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직선적인 흐름으로 변화한다면, 이미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되돌리며, 또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미리 볼 수 있겠는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감한다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추억 하는 것과 같다. 서양에서 생겨난 마인드 컨트롤에서는 과거를 당기고 미래를 당겨서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본다고 표현하지만, 실상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기 때문에 굳이 당기는 수고조차 할 필요도 없다.
만일 우리가 늘 그렇다고 생각하듯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 날 이때까지 나이를 먹었고, 아련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그 윗대의 조상들도 옛날에 살고 있었고, 내가 어렸을 때 아리땁던 부모님들이 이미 시들어 노인이 되었고, 또 들녘의 갖가지 꽃들도 봄에피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사라지는데 왜 시간이 없다고 하는가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이 오는 이유는 변역하는 현상에 시간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개념이 애당초 없으며, 생장소멸을 거듭하는 삼라만상 그 자체를 하나의 변화로 받아들이면 모든 의문은 사라진다.
변화에 시간 개념을 합하지 말라. 사물이 변화함을 볼 때 시간을 분리시키지 말고 내 자신이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이름하여 공기속에 살고 있지만, 공기가 있다 없다를 감지하는 사람은 없으며 감지하려는 시도조차 무의미하다. 물 속의 물고기 역시 물에 대한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그냥 그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 자신이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없음을 알게 되며, 이 순간에는 시간속으로 들어 간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된다.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진화론에서 주장하듯 원숭이로부터 진화에서 지금의 인간이 되었을까? 아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있었다. 현재의 형태 그대로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원숭이가 진화에서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인간이 되지못한 원숭이는 무어란 말인가? 사람은 진화하는 동물이 아니고 애당초 사람으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아메바로부터 원숭이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되었다는 주장은 유한의 눈을 가진 사람들의 추측에 불과하다. 몇천 년 전부터 심어 왔던 오이씨를 수천만 대를 거듭하여 심어도 여전히 오이가 나오지 호박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볍씨는 아무리 거슬로 올라가도 여전히 볍씨다.
존재란 ‘현재 있는 것’을 뜻한다. 존재라는 말 자체에 이미 현 시점이 가정되어 있는 것이 유감이지만, 존재한다는 것에다 조차 시간 개념을 합하지 말라. 모든 존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존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시간과 마찬가지로 시작도 끝도 없다. 개체의 탄생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는 우리가 말을 그렇게 사용하기에 존재라고 할 뿐, 실상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언제나 그대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없던 적이 없었다. 유한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아 존재지 굳이 존재라는 말을 붙일 수도 없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의 이야기로서,이 이치를 밝힌 대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다. 풀어 말하자면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함이니, 이 역시 시간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물질, 즉, 모든 만물이 색이다. 시간에 물리적 개념이나 시간이란 이름을 덧붙이면 이 역시 색이다. 이 이치를 어찌 다 말로 설명하랴.
               
대한불교노인불자연합회
회장 현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copyright ⓒ 2007 우리불교신문, 우리불교 WTV All re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16 대형빌딩 2층/ 팩스 02) 6442-1240 /

전화 02)735-2240 /  메일: woob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