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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잊어라. 그래야 지금이 행복하다.(3)

차에 있어 우리에게 좋은 과거가 있었던가


맛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주제다. 그러나 맛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정신과 육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제각각이다. 차의 영역에서는 맛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음식처럼 광범위하고 두루뭉술하게 다루지 않는다. 차의 맛에 대해 막연하게 다루거나 아예 입을 닫거나 과학을 기반으로 한 상식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몰라서 피한다고 본다. 여기서 거론하는 차의 맛은 개인의 문지방을 넘어선 이야기이다.

맛은 일차적으로 혀에 화학적 접촉이 이루어진 이후 뇌에 전달되어 불쾌하냐 유쾌하냐 판단한다. 판단이 거듭되면 기억이다. 지구에서 맛, 혀에 대한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늦고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차의 맛과 품질 검사가 연구소 문지방을 넘어 대중화된 데는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다. 차의 맛은 품질 검사의 한 종류인 심평이라는 과정을 통해 알려진다. 이 분야는 인재 양성이 빨리 이루어지는 분야도 아닐뿐더러 차는 특수 작물이어서 직업적 수요가 많지 않아 시간이 더 걸렸다.

1940~50년대부터 식품 관능검사는 미국에서 발달했다. 차의 품질 평가 기초는 18c 초 영국 홍차에서 시작되어 미국, 일본, 중국으로 퍼져나갔다. 차의 향기와 맛을 감각기관인 눈, 코, 입, 촉각으로 평가하는 일을 관능(官能) 검사라고 한다. 관능검사는 우리 농산물에도 다 해당된다. 다만 알려지지 않아서 어떻게 등급이 나뉘는지 어떤 상품이 우수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잘 몰랐을 뿐이다.

차는 눈으로 색을 판단하고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손으로 탄력을 측정한다. 차의 맛(Tea Taster)을 보는 일은 전문 기술 훈련으로 능력을 쌓는다. 와인 테이스터처럼 심평하는 사람도 비슷한 학습과정을 거친다. 다른 식품이나 농산물 관능검사 기반이 얼마나 탄탄한지 몰라도 차 품질 평가에 관한한 우리나라는 아직 개념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 중이다. 그러나 대중 인식은 지금으로부터 6~7년 사이에 커피 시장의 영향을 받아 많이 나아졌다.

한국 차심평(茶審評)의 시작

좋은 차는 일차적으로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달렸다. 좋은 차 없이 차 문화를 거론하기가 민망하다. 차의 품질, 즉 맛과 상관없는 차 문화는 공허하다. 음식 맛과 상관없는 음식 예절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자에게 가공 기술과 심평을 가르치는 일은 2003년에 필자가 처음이었다. 보성 차시험장 성분분석 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순천대 교수와 생산자들로 이루어진 그룹 초청으로 해남 설아다원에서 첫 심평 수업을 했다. 그전에는 알거나 모르거나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중국 출입을 했던 얼마의 사람들이 개인 경험 정도였지 심평이란 용어를 공표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알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분야가 중국에서 도입 · 학습을 받은 사람이 차계에 뻔하고, 가르친 선생 또한 정해져 있기에 그 선생 밑에서 끝까지 마무리를 지어 직업으로 활용한 사람은 당시 필자밖에 없어서이다. 필자의 스승 심배화님 말씀으로는, 필자보다 먼저 중국을 출입하여 심평을 접한 어느 단체의 모(某) 씨는 한국 차를 들고 서너 번 왔다간 뒤로는 다시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람 다음으로 필자가 스승을 찾았고 전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과정을 습득해 직업을 삼았다.

세상에 심평이라는 분야를 알리는 필자의 칼럼이 잡지를 통해 나간 뒤로 심평 열풍이 불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기고와 강의를 통해 포문을 열었으니 최초라는 수식어에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도 될 것이다. 필자가 한국 심평 역사의 장을 열었다는 자랑 따위를 늘어놓으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자부심까지 일부러 내려놓고 싶지도 않다.

심평의 도입은 차산업에 매우 중요하다. 그 도입은 차의 가공 기술에 절대적이고 또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소비자의 입맛을 바꾸어 세상의 변화에 참여한다. 소비자의 입맛은 또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어 수준 높은 차 문화 창출을 이끌기 때문에 결코 가볍지 않다. 심평의 도입과 가공 기술의 변화가 새로운 차 역사를 만드는 일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차심평의 시작은 차산업에 획기적 발전을 부르는 초석이 되고, 맛의 과거와 현재를 경계 삼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차의 역사 아닌가. 그 중심에 필자가 서게 된 것은 우연 중의 우연이었다. 우연을 자랑삼을 만큼 지각이 없지 않으나, 우리 심평의 시작이 차의 역사에서 차산업의 바탕이나 중심을 이룰 만큼 중요해서다. 시작의 경위가 구체적이지 않고 어설프면 오히려 현실이 왜곡할 소지가 있어, 심평 시작의 전후 상황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자랑을 핑계 삼았다는 오해를 받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 판단에 좀 늘어놓았다.

차의 품질과 심평

심평(審評)은 차의 관능검사를 일컫는 용어다. 소비자들은 품질평가의 줄임말 품평이라는 용어는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차 품질의 우열을 가리는 품평과 심평은 세밀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 심평이 관찰 심도가 깊다.

차 품질 심사 평가 항목은 5가지가 있다. 지금은 품질 비중이 가장 큰 '향기'와 '맛'만을 거론해 본다. 심평은 우리나라처럼 객관적 품질 측정 기준이 없는 경우에도 상대 비교를 통해 절대적 위력을 발휘한다. 심평은 그만큼 권력이 커서 마음을 좀 나쁘게 먹으면 구린내 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공정함으로 바르게 사용하면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된다. 차의 세계에서 심평이 선구자 역할을 당연하다고 하는 이유다.

차는 특수 작물이기는 하나 농산물의 한 종류이므로 심평 하는 사람의 능력이 문제지 음지에서 심사평 없는 일이 아니라면 심평에서 눈속임은 없다. 식품화학, 생리학, 심리학, 통계학, 물리학 등의 지식이 융합된 과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과정 자체가 검증이며 검증 자체가 사사로움이 끼어 들 여지가 없이 명확하다.

예를 들어, 향기에 잡냄새가 있는 것을 코 있는 사람인 이상 그 잡냄새를 향긋한 꽃향이라고 사기 칠 수 없다. 심평 하는 사람만 코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람들도 다 같은 코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심사 결과를 대중에게 확인시켜 주는 과정을 생략하여 심사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진짜 좋은 차를 선정했는지 아닌지 심사 결과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은 일을 사기는 아닌가 의심할 수는 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품질 기준 이상의 영역에서 기호의 선택 문제는 자유다.

과학적 판단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 분야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제대로 된 시작으로 잘 알려지지도 않고,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산자와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갖고 태어난 혀, 자신이 좋아하는 선호도에 관한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할 만큼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 반응은 이 분야가 대중에게 뿌리내리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준다. 사람마다 맛감각이 다른 것은 혀의 미뢰 세포 수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정보를 잘 알지 못해 서로의 혀 감각에 대한 불신이 높다.

타고난 몸의 일부인 혀는 그 사람의 인격으로 동일시되고 또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감정적 기억(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시던 어떤 음식으로 인한 향수 등)이 연관된 주관적 입맛은 누구든 신성불가침 영역이 된다. 물론 기꺼이 존중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적어도 차에 관한 한 과거의 기억을 잊는 것이 좋다. 우리는 지금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사회적인 눈으로 차를 논하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란 일단 초의 스님 시대 이후다. 그때부터라면 태어나기도 전인데 차를 마셔보아서 그런 말이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설명하자면, 1990년대 우리나라 차의 맛과 그 이전의 차 맛에 변화가 있지 않았음을 장담해서다. 오히려 상품화가 강화된 90년대 차 맛이 그 이전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은 자료에 나타난 기록을 볼 때 차의 맛을 거론할 정도도 되지 않았다. 차를 다루는 방법 자체를 몰랐고 더더욱 만드는 방법은 기술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나물 반찬 정도의 궁색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차의 변천을 화제로 올리는 것조차도 거창할 정도다.

과거의 맛은 ‘탄맛’

과거의 차 맛을 잊으라고 한 것은 개인의 감정 기억을 간섭해서가 아니다. 1990년대 차의 맛이 우리나라 차 맛을 대표한다고 보면 그나마 체면은 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표적 차의 맛은 바로 ‘탄맛’ 일색이었다. 90년대 이전의 차들이 더 형편없으면 없었지 우리 실정상 더 좋지는 않았음을 전제로, 과거 차의 맛이 현대의 새로운 맛을 인식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맛을 잊으라고 했다.

현대의 새로운 맛이란 필자가 과학지식과 품질 평가를 바탕으로 가공 기술에 변화를 일으켜 생산한 샘플(2003년부터~) 상품과 그 이전부터 생산된 오설록(2017년 필자의 칼럼으로 재인식된 ‘오설록 세작’의 상품 가치를 그 누구도 심평으로 설명한 사람이 없었다)의 제품이 해당된다. 2017년 필자의 칼럼으로 재인식된 ‘오설록 세작’의 상품 가치를 그 누구도 심평으로 설명한 사람이 없었다.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혀의 퇴화(과거의 맛 기억 집착은 혀의 퇴화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를 막고, 현재 누려야 할 새로운 맛이 주는 행복한 혀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발전의 의미에서 과거의 맛은 잊어야 한다. 차에 있어 주관적 입맛을 벗어나 객관적인 맛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육체의 건강과 혀의 노화를 막는 길이다. 세상의 잣대(과학적 품질 기준에 의거하여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유쾌함을 주는 공인된 맛물질의 화합물)가 되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일에 무조건 거부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운 맛은 기회다.

혀의 퇴화를 막아라

혀는 40대 중반이 되면 서서히 퇴화(늙는 것)를 시작하여 50세 전후가 되면 급격히 퇴화한다. 신체의 노화, 주름, 노안, 치아의 마모 등은 눈에 띄게 확인하고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물며 몸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뼈마디의 노화까지 우리는 적나라하게 느끼고 산다. 그러나 혀가 퇴화한다는 사실은 그처럼 예민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막연하게 ‘손맛이 예전 같지 않네’ , ‘왜 점점 짜게 먹게 되지’ 혹은 ‘왜 점점 음식 간이 짜지지 늙었나?’ 하면서도 늙음을 잘 인정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늙었나?’ 하는 그 말과 생각이 핵심이다. 음식 맛이나 음식 솜씨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을 때는 이미 퇴화가 진행되어버린 이후다. 짠맛의 강도가 강해져 돌이킬 수 없는 아쉬운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아기의 살 같은 어린 찻잎에서 고소한 콩맛 나는 아미노산맛으로 혀를 적시면 감각은 물론 정신적 즐거움이 넘치다 못해 존재 자체가 곧 세상인 듯 황홀한 착각이 든다. 폴리페놀의 싱그러운 녹색 차탕은 눈으로 먼저 들어와 오장을 씻어 주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세상에 둘도 없이 선량하고 신선한 인간으로 환생한 기분마저 든다. 아미노산과 폴리페놀의 맛은 오롯이 뇌에 차곡차곡 쌓여 삶의 기억으로 남는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아미노산과 폴리페놀이라는 물질이다. 아미노산과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은 국적을 떠나 인종을 떠나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나누고 느끼는 범세계적인 맛물질이다. 이 신선한 화합물이 과학기술 덕분에 맛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혀를 일깨우고 유혹한다. 이런 맛물질이 퇴화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지만 정작 그것을 소비할 대중은 생소함을 이유로 거부하곤 한다. 거부의 이유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옛날 차의 맛’이다. 새로움에 주저하고 일단 거부하고 보는 인식은 인간의 여러 일 중에 아마도 차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조건 새로움을 받아들이라는 묻지마 요구가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다.우리 차의 과거 기억은 부정적인 입맛이기 때문이다. 좋은 입맛을 보존하기 위한 과거의 기억이라면 정신과 육체에 이로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차에서 과거의 기억은 객관적 입맛 기준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녹차 맛이었던 탄맛은 숭늉처럼 구수하고 탕색은 짙은 황색이었다. 탄향과 탄맛은 정도에 따라 구수함으로 나타난다. 양호와 비정상 중에 불량, 비정상으로 분류한다. 마치 소고기 안심을 바싹 태운 딱딱하고 질긴 육질을 씹으면서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해당된다.

맛의 구성은 아미노산과 카페인, 폴리페놀의 연합으로 복합적이다. 맛을 판단할 때는 엄격한 기준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품질을 판단하는 물의 온도와 차의 양, 농도와 가공 기술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가져야 한다.

2006년 이전 우리나라 덖음차들은 수제차가 많았다. 덖음차 가공은 잔뜩 달궈진 솥에 차 3~5kg을 가득 넣어 면장갑을 몇 개씩 끼고 튀겨내듯 덖는다. 그래서 탄차 일색이었다. 발효음식을 빼고 일반적인 모든 음식의 생명은 신선함이다. 녹차의 생명도 신선함을 기준으로 플러스알파다. 신선함을 지키는 것은 생산기술의 기본이다. 탄차에 무슨 신선함과 풍미가 있겠는가? 탄밥에서 신선한 밥의 향기와 맛의 풍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누룽지를 매 끼니로 먹지 않는다.

차를 들여다보면 재배 환경에서 가공하는 사람의 머릿속까지 보일 때가 많다. 책을 읽는 것처럼 차를 읽어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분명 특별한 일이다.

차와 물의 온도

맛 하나에 또 하나의 절제된 세상이 있다. 객관적 입맛을 습득하는 것은 계곡에서 바다로 나가는 것과 같다. 혀의 퇴화는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마시는 농도로는 객관적 입맛을 위한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첫 번째 문제는 물의 온도가 맞지 않아서이다. 녹차의 맛을 판단하는 끓는 물 온도는 80℃이다. 사람들은 대개 60℃ 좌우의 물을 사용한다. 그 온도에서는 수십 년 차를 마셔도 차 맛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입맛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좋은 입맛 학습은 사춘기 이전이 가장 좋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 간다는 말의 이치는 당연하다. 입맛에 따라 질병이 관리되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한다. 시대에 따른 새로운 입맛에 주의 깊은 관심과 거부감의 실체를 잘 파악하여 모두가 삶의 질이 높기를 바란다. 과거의 맛이 좋았다면 굳이 기억을 버릴 이유가 없다.


-다음 회에는 차가 생산되는 계절이므로 -수제차와 기계차에 대한 비밀-이라는 주제로 지면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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