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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마시기 전, 찻그릇에 대한 생각(2)

차의 맛과 다기

컵이나 밥공기 대신 다기를 사용하면 첫째, 차의 향기 보존에 유리하다. 다기는 컵이나 밥공기보다 크기가 작다. 차는 발향성 강한 기호품으로 큰 그릇에 우리는 것보다 크기가 작고 주둥이가 좁은 그릇에 우리면 와인처럼 향취를 즐길 수 있어 전용 다기가 적합하다.

향은 맛과 함께 차의 품질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향이 있는 음식과 향이 없는 음식의 차이는 구미(맛 감)를 당기느냐 아니냐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면, 향기 있는 음식이 구미를 더 당겨 맛있다는 의미다.

차는 화학 접촉에 의한 향과 맛이 정신과 심리에 영향을 주기에 특별한 음료라고 하여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차에서 말하는 정신의 즐거움이란 인간 중심의 관점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입장, 즉 성차(成茶: 과학을 기반으로 한 가공 기술)를 바탕으로 얻는 마음의 즐거움(得茶)을 말한다. 즉 차를 마시면 내가 나를 주도적으로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에 의한 즐거움이다. 특별한 기호식품의 특성들은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무색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가 본질이 아니므로 더 언급하지 않겠다. 

성차득차는 선성차후득차(先成茶後得茶)의 의미다. 한 · 중 · 일 세 나라를 합쳐 차의 세계에서 이 개념을 고안한 사람은 필자가 처음이다. 필자의 저서 『육우다경』주해에서 처음 밝혔다. 이 용어는 필자의 차의 정신이자 차의 철학의 근원이자 전부다.

둘째, 다기를 사용하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여 맛 품질에 도움이 된다. 더운물로 우린 차는 식기 전, 향기가 사라지기 전에 마시는 것이 중요한데 컵이나 밥공기에 우려마시면 미처 다 마시지 전에 차갑게 식어버릴 염려가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식은 커피를 맛있다고 먹는 사람도 있던가. 흔히 하는 말로 ‘식기 전에 들어라’이다. 다기는 크기가 작아 조금씩 우려마시도록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컵이나 밥공기를 사용하더라도 조금씩 마시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찻잔보다 컵이나 밥그릇이 향기는 빨리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코를 바싹 들이대고 즐기면 안 될 리 없지만 찻잔보다 빨리 식는 건 뻔하지 않은가. 식어버린 차는 차가 아니라는 말을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차의 화학적 접촉으로 느끼는 맛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다기와 일상 그릇을 비교한 설명이지 초심을 잃지 않았다. 

차 맛의 온도

식은 차의 기준을 40℃ 이하로 내려가지 않음을 의미한다. 차 온도가 40℃ 이하로 내려가면 떫고 단순해져 맛이 없다. 차가 비싸기도 하고, 가공을 하는 데는 사람의 노고가 크고, 또 좋은 음식을 일부러 맛없게 먹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게 성의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면 차뿐만 아니라 어떤 좋은 음식이라도 취할 자격이 없다고 말해도 허물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차 우리는 온도나 차의 양이나 또 마시는 온도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시간이 허락되는 상황을 봐가며 할 수 있는 말이어서 더 이어가지는 않겠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차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다기를 구입하는데 몇 가지 참고 사항을 적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다기 세트들은, 차가 발달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디자인이나 기능이 좋다거나 우수하여 아주 유용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만드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이나 품질 기준에 대한 인식은 꽤 낙후되어 있다. 차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있다는 말과 궤를 같이 한다. 둘은 이와 잇몸처럼 함께 발전한다. 그래서 여의치 않으면 커피잔에 차를 우려마시라고 차라리 권했다.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소비자에게 품질 운운하는 것이 무리이고 필자도 덜 피곤하면서 차를 가까이하도록 유도하는데 안정적이어서다.

다기는 디자인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기능인데 미감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섬세하게 다기의 기능을 고려한 우리나라 찻그릇을 보지 못했다. 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을 가졌기에 기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차가 발달한 이웃나라 다기의 장단점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 수준이 곧 차문화의 수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관(조그만 찻주전자)에 차를 우려 잔이나 숙우에 따를 때 주둥이를 타고 찻물이 줄줄 흐른다.

품질기준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는 풍토가 아닌데 소비자는 다기 만드는 사람의 형이상적 마음이 형이하학(물질) 존재의 목적인 줄 안다. 찻그릇만을 본다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상품성이 떨어진 다기들을 그들은 편안한 ‘한국의 자유의 미(美)’ 또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을 고려하지 않은 생긴 대로 ‘손맛’이라는 맛깔스러운 단어를 내세워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게 말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전통이라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분위기, 편안한 자유가 넘쳐 다기의 본분을 아예 잃고 살지 않을까? 절도와 체계를 바탕으로 한 자유가 아닌 방종, 개인기를 갖추지 않은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다관과 짝을 이루는 숙우도 주둥이에서 찻물이 질질 흘러도 원래 그런 것인 줄 아는 소비자, 누구의 눈 어두운 탓일는지.

차와 다기는 바늘과 실의 관계다. 차 지식은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차산업이 영세하고 낙후되다 보니 차가 생산되는 나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차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을지 모른다. 또 좀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전통적으로 차라는 것을 어깨너머로 전수받고 어깨너머로 들은 통속적 상식들로 차 생활을 한다. 그러기에 찻잔 하나가 차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 다기에 대한 위생상태가 차 품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향과 맛의 객관적 기준에 대한 정보 없이 습관적으로 마시기 때문에 정작 대중화가 된 이 시대에 내놓을 차 살림이 없어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는 사찰에서 많이 소비한다. 우리나라 차 전통은 사찰이 지켰다고 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 지식에 대한 살림은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연재를 하는 동안 차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높여 사회적 눈높이의 변화를 촉구하고 한정된 소비자를 탈피하여 새로운 고객층과 가까이하여 차 시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많지도 않은 차가 생산되는 나라인데 그나마 차 소비가 활력을 잃고 있음이 안타깝다.



 

한유미는 차의 심평(Tea Tasteing), 가공 선생이며 저서로는「육우다경」「동다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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