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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 6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 6

 

민중들의 불교 수용에 있어서 그 습합의 형태는 민속신앙이란 측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민속신앙은 현세의 복락과 구원을 바라는 민중들의 자연발생적인 열망을 담은 신앙체계이고, 이에 반해 佛敎는 정제된 윤리이자 만물의 본질을 규명한 진리구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양자의 習合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일차적으로 우위의 이념체계인 불교가 하위의 신앙체계인 토속신앙을 흡수하며 전개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민속신앙의 요소를 불교 안으로 흡수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상위의 개념이 하위로 흐른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본연의 불교의례로서 自行儀禮가 大乘佛敎의 발전에 따라 他行儀禮化한다는 것은 한편 불교로 하여금 재래의 민간신앙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불교적 측면에서 불교가 大乘佛敎化하는 과정에서 민속을 수용함으로써 포교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불교와 민속이 유기적 복합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민간신앙은 교리와 체계적인 신도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신앙에 대해 상대적으로 포용적이며 관용적일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즉 자신들이 주장하는 문서화된 교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신앙과 대립, 비교하는 성찰적 태도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종교간 습합,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적 양상은 불교의 전통적 포용사상과 우리 민족의 정서가 이루어낸 독특한 종교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전통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이것은 한국불교가 갖는 가장 커다란 특징이며 종교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三國遺事』를 살펴보면 그 소재된 내용 전체가 神佛習合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외래 불교문화와 접촉하며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가는 습합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산신신앙이다.

불교의 각종 의례는 불교 본연의 佛事와 내세의 명복을 비는 齋, 現世福樂을 위한 각종 기도들이 있는데 민중의 사찰 출입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에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불교 의례 속에는 적지 않은 민간신앙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그러나 민간신앙과 깊은 교섭 관계를 지닌 것은 신도 대중의 신앙 형태이며 그 반영으로 표현된 것이 사찰과 거기에 모신 神格 들이다.

마을마다 산이 있고 산마다 山神이 있어 산신을 숭배해 왔는데 佛敎는 在來信仰을 수용할 때 호법신 중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의 일부를 산신에게 부여하는 적극적 수용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사찰 어디에나 산신각을 모셔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본당 뒤꼍에 ‘七星神圖 ’나 ‘山神圖’ 를 모셔 놓고 , ‘七星閣’ 또는 ‘山神閣 ‘山靈閣’’이란 명칭을 붙여 놓았는데 이 세 전각이 바로 삼성각으로서 이것이 바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를 설명 하는 핵심이며, 그 가운데 다른 나라에는 없는, 거기에 모신 三神 이란 존재는 한국 사찰만이 지닌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山神閣’은 불교 전래 이전부터 있어 온 고유 신앙의 잔존 형태로서, 재래신앙과 불교가 습합된 일단이다 .

원초의 산악숭배와 범 숭배, 여신의 남신으로의 전환 등 기나긴 역사 속에서 분화 과정을 겪으며 이렇게 전승된 산신숭배는 원시적인 자연숭배 신앙에서 유래된 것으로, 장엄하고 험준한 산악은 식물과 금석 등은 물론 맹수의 서식지로 주민의 생활에 있어 경제적인 이익 추구와 더불어 생활의 방어에 있어 공포적 심리를 벗어나기 위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

불교에서 산신이 신앙되는 예는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 뒤꼍 한 옆에 있는 산신당 (산신각 또는 칠성각, 독성각)에서 발견되며, 거기에는 산신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산신신앙은 오래 전부터 전래되어 오는 우리 민족의 민간신앙으로서 불교 전래 이후 이들 산신을 護法善神으로 불교가 포용했던 것이다. 호법선신으로서의 산신이 불교화한 모습으로 다시 독립된 신앙의 모습을 갖추게 되어 사원 내에 산신각을 짓고 산신탱화를 봉안하게 되는데, 하단신중탱화의 하단 位目에 ‘奉請萬德高勝性皆閔寂主山神’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산신탱화의 도설은 산신의 인격신과 그 화신인 호랑이가 그 내용이다. 산신의 화신으로서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일은 재래의 민간신앙이나 설화에서 자주 산견되는데 불교는 이러한 발상법을 받아들여 산신신앙으로 수용하였다.

七星信仰은 北極星과 北斗七星에 관한 관심이 자손번영과 수명장수였던 민중의 도교적 신앙이 그대로 불교에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神力이 있었기에 일반 민중들은 칠성을 신봉하게 되었고, 이런 민중의 염원을 구체화된 부처님의 모습으로 수용하여 불교적으로 변용시켰다. 나아가 도교의 칠성을 불교의 七如來로 신앙하고 있음을 七星神仰儀軌나 칠성탱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칠성탱화의 도설내용을 보면 中央主佛에 熾盛光如來, 그 좌우보처에 日光·月光菩薩 그리고 칠성의 불교화를 나타내는 칠여래와 칠원성군, 그 외 三合六星二十八宿 등으로 되어 있다. 七星神은 수명장수와 밀착되어 있는데 그것은 칠성신이 순수한 道敎의 신이라기보다는 이미 중국에서 佛敎化된 후 우리나라에서 道敎와 佛敎의 습합현상을 통해 韓國佛敎 특히 寺刹에 하나의 信仰空間을 차지함으로써 이루어진 信仰形態가 변형되었된 것으로 道佛習合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山神信仰이 집안의 재앙을 덜고자 한다면 , 七星信仰은 인간의 수명 ·자녀 생산과 장수를 바라는 목적을 지닌다. 이러한 七星神仰은 약간씩 형태는 다르지만 전국적으로 통용된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안치하는 것을 七星版 이라 하고, 거기에 인간의 名籍을 관리하는 七星을 그리거나 구멍을 뚫어 놓는다. 또한 열두거리 굿 가운데 핵심부분인 ‘제석거리’ 는 인간의 수명을 기원하는 부분으로, 이 가운데 칠성님께 자녀의 수명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교에서 출발한 七星信仰이 불교사찰의 한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인 星辰信仰과 함께 七星이 상징하고 있는 인간수명을 좌우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 근거하여 사찰이 영구적으로 지속되도록 하고자 칠성각을 조성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어떠한 특이한 일이 발생하면, 그것은 곧 미래에 발생할 어떠한 일의 전조라 믿고, 사전의 일을 통하여 미래의 일을 추측하거나 판단하였다. 이것이 곧 점복이며, 사전에 나타난 일들이 곧 豫言이다. 여기에서의 豫言은 인과관계로 치면 因 곧 원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占卜이란 인과관계의 인으로부터 果 즉 결과를 미리 알아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因에 해당하는 예조를 기초로 한 결과의 추측, 즉 점복의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축척된 지식의 소산이다.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占者는 神託을 통해 백성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占만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 생기면서 분화(업)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三國遺事󰡕에 소재된 내용 가운데 占卜과 豫言을 대상으로 설정하여, 王의 豫言, 日官의 占卜, 동물점 豫言, 점복가의 분석 등 네 가지로 그 내용을 검토해 보았다.

󰡔三國遺事󰡕에서 日官, 占卜 등 예언과 관련된 어휘는 모두 19편에 이르고 있다. 전문적으로 예언을 담당하는 점성가를 중심으로 國家的 狀況과 關聯된 내용은 14편이 있으며 사적인 占卜은 9회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이들 󰡔三國遺事󰡕에 소재된 占卜과 豫言은 단순히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넘어 당시 기성종교가 유입되기 전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믿음의 한 형태이며 민간신앙이 高等宗敎인 불교와 만남을 통해 다툼도 있었고, 그 다툼의 수단으로 예언과 치병이 동원되고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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