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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5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5

 

 

불교의식과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행사로는 燃燈會와 八關會를 들 수 있다.

 

이는 원래 佛敎의 행사인 燃燈이 민간에 널리 전해져 이전의 天神祭와 혼합을 이루어 토착화한 것이다.

 

八關會는 土俗信仰과 불교가 融合된 것으로, 원래는 토속신인 天靈과 五岳, 大川 등에 제사하던 제전으

 

로 불교와 민속적 요소가 합치되어 있었다. 고려는 또한 삼국시대의 산신사상을 이어받아 산신을 숭상

 

하고 德積山·白岳山·松岳山·木覓山의 4대산의 산신에게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는데 무녀가 그 의식을

 

거행하였다.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고려조까지 이어진 신앙은 山神信仰이 주류를 이루며 꾸준히 불교와 습합되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와 더불어 風水地理, 七星信仰, 占卜과 豫言, 符籍 등의 民間信仰이 신봉되

 

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연의 『三國遺事』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民間信仰의 모습은 이전부터 그

 

당시까지 이어져온 민간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一

 

然이 살았던 시기까지 이어져온 民間信仰 가운데 山神信仰, 七星信仰, 占卜과 豫言, 風水地理, 符籍 등

 

을 대상으로 이러한 민간신앙이 불교와 어떻게 습합하고 있는가를 종교습합의 이론을 원용하여 살펴보

 

았다.

 

 

많은 종교들은 外部的인 것,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늘 수용하는 가운데 不斷한

 

自己更新을 이루어 나갔다. 살아있는 종교는 대부분 그와 같은 作業을 통해 계속되며 이러한 종교현상

 

을 습합현상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습합(syncretism)은 ‘두 가지 이상의 종교적 요소(혹은 전통)의 상호접촉에 의하여 생기는 현상, 형태’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현상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그것을 보는 시각이나 보이는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종교의 습합은 사실 종교 전통 사이의 교섭 관계를 의미하며, 일정한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祈福, 求道, 開闢의 三大 신념 유형은 어느 종교 전통에나 다 있는 것이기에 어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어떤 특정한 신념 유형을 유지하게 될 때 그 유형에 입각해서 여러 종교 전통의 사상 내용들을 수용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습합사상 내지, 습합종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민족 고유의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종교다. 더구나 다른 민족과의 접촉을 통하여 교류할 때 民族宗敎는 外來宗敎와 만날 수밖에 없고, 이때 일어나는 복잡하고 미묘한 정신사의 변화는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외래종교가 고유의 종교와 너무나 다를 경우 그것들의 관계는 애당초부터 불협화음이나 냉담한 거부반응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반대로 서로간의 相似와 공통의 요소가 적지 않을 경우 두 종교의 만남은 오히려 習合의 가능성을 띤 것으로 나아간다. 이때 두 종교는 당연히 상호친화의 길을 모색하면서 복잡 미묘한 습합의 과정을 만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설사 외래종교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과 더불어 민족종교의 일익을 담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전통적 요소마저 흡수ㆍ소화하게 되는 것이다.

民間信仰의 구조는 맨 밑바닥에 생득적으로 발생한 자연신앙이 있고, 거기에서 정령숭배가 일어나고, 이 숭배에서 신령이나 조령의 신앙이 진전되고, 이와 함께 신당·감터란 신앙이 동반했다. 이 2차적인 民間信仰이 다시 성립종교와의 접촉에서 세속적인 혼합신앙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民間信仰은 민간 사회 층에서 중첩적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民間信仰을 한국인의 종교생활 체제란 측면에서 보면 성립종교의 밑에 정위되면서도 그 종교들의 基層部에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고래의 전통적 民間信仰은 세월에 흐름에 따라 비록 제반 양상은 바뀌어 갈망정 아직도 속신으로 民間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은, 이러한 사상이 바로 韓國文化의 地核을 형성하고, 한국문화의 심층에서 여전히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유, 불, 도교와 습합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우리는 항상 문학을 생활의 반영이니, 생활 체험의 기록이니, 심상의 반영이니 하여 문학을 통하여 그 시대의 제반 상황을 엿보게 된다. 이를테면 작자의 사상, 감정이라든가, 사회적 배경 및 그 민족의 사상적 , 종교적 배경 등을 작품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이러한 작품을 통하여 우리의 민간신앙을 아울러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 시기는 대체적으로 眞平王ㆍ宣德王 이후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이 때 부터 불교의 대중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변용된 원인은 그 일차적 원인을 무속과 불교가 그 기저에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런 종교적 미분성의 기반을 지닌 체 불교가 한국적 종교 토양 위에서 성장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재래의 전통적인 무속 내지 민간신앙의 요소가 불교 속에 들어가고, 이렇게 불교와 무속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무속 쪽에서 다시 불교의 종교적 위력 내지 조직성을 원용하여 相互授受적 習合現象이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토착 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습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유독 한국불교만의 현상이 아니라 불교 전반의 특징이다. 불교는 出家와 在家가 뚜렷한 종교적 관심의 차이를 갖고 있기에 출가는 초세간적 성격이 강하며 이런 이유로 재가의 現世求福的 관심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관심은 토착적 신앙과 습합 내지 묵인을 통해 충족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민간신앙의 바탕 위에 가장 먼저 들어온 外來宗敎가 佛敎다. 따라서 韓國의 一般的 民間信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으며, 한편으로는 民間信仰과 가장 두드러지게 습합현상을 보이면서 民族宗敎로 발전하였다.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과정을 民間信仰의 佛敎信仰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면 첫째는 佛敎 전개의 단계로서, 三國時代에 佛敎가 전래되어 기존의 신앙체계를 토대로 정착하려는 시기이며, 둘째는 佛敎해석의 단계로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산지에 상당수의 伽藍이 창건되는 특징을 갖는 시기이고, 셋째는 佛敎 土着化의 시기로서, 12〜13세기 고려 중기 이후로 伽藍 내부에 민간의 신앙이 佛敎化되는 구체적 증거인 七星閣ㆍ三聖閣ㆍ山神閣 등이 건립되는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 번째 시기를 주목해 보았다. 이 시기에 佛敎는 密敎的인 方便佛敎에만 머물지 않고 불교 본연의 사상체계를 형성해 나가게 되며 新羅統一期에 華嚴思想을 기반으로 佛敎 전래 이후의 신앙적 기반을 토대로 점차 토착화되어 가게 되는데 이 시기는 민간신앙과의 관련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것은 浮石寺를 비롯한 신라의 山地伽藍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창건되었으며, 초기의 방편적 기능에 머물렀던 佛敎가 신라사회에 주도적 사상으로 등장하게 되고, 伽藍의 입지 장소가 산지로 택해지면서 민간의 신성한 지역으로 여겨지던 지역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佛敎와 民間信仰의 習合이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佛敎의 자연관이 신성한 장소를 택해야 한다는 교리적 측면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사상적으로 高等한 논리를 갖고 있었던 佛敎가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낮은 논리를 지닌 기존의 民間信仰을 흡수하여 佛敎로 대체하려는 의도적인 측면이 더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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