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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2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2

이로써 우리는 『三國遺事』가 비슷한 것을 기록한 여타의 전적들보다 각별한 의미를 갖는가 하는 가에 대한 물음에 최소한의 답을 마련하게 되었다. 『三國遺事』가 禪僧으로서의 一然이 당시의 현실인식에서 출발하여 새로이 인식한 자국의 역사전통의 관한 선택적인 敍事였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이 책에 소재된 민간신앙에 관한 기록이 바로 그의 이러한 인식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推察할 수 있다. 『三國遺事』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이 불국토사상임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불국토를 지향하는데 一然은 佛法의 獨善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仙桃聖母와 같이 단순히 長生하는 신선의 술법을 배워 홀로 獨善에 사로잡힌 존재가 아니라, 山神이 되어서는 국가를 鎭護하면서 한 가난한 여인의 불상을 조성케 하여 衆生을 濟度하는 길을 열어주고 菩薩行에 精進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외에도 『三國遺事』에 등장하는 貧富, 貴賤, 僧俗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물론, 천지 자연, 山川이나 龍虎, 神鬼 등과 鳥獸와 草木 등은 서로가 그 성분을 달리하는 대립 투쟁의 존재라기보다는, 佛國土 조성에 참여하는 존재로 파악되어진다. 이러한 모습들은 일연이 우리나라의 고대사가 더 나아가 우리 역사의 原型이 바로 이들 다양한 존재가 모두 모여 하나로 엮어내는 장엄한 것이며, 유교와 불교, 국가와 사회, 지배층과 민중이 계급과 분파를 달리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전통적 공동체적 생활에 토대를 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대상과 사건에 대한 균형의 유지를 일연은 전면적으로 고민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三國遺事』에 소재된 민간신앙은 바로 서민적 생활의식에서 나온 古來의 전통적 원시종교의식이 세월에 흐름에 따라 자리 잡으면서 민중문화의 저변을 흐르며 地核을 형성하고, 우리들의 행동양식을 결정할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적지 않게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三國遺事』전편에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신라를 온전히 그리자면 불교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일연은 잘 알았다. 종착은 불교에 두고자 했으나 신라가 가진 민속종교의 여러 면을 담아두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더러 그 둘 사이의 갈등과 다툼 속에서 신라만의 독특한 신앙양태가 절묘하게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의 균형 잡힌 글쓰기의 태도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赫居世와 脫解의 出自가 민간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은연중에 밝혔으며, 드디어 불교와 민간신앙이 대립하는 현장에 서서, 그들이 맞닥뜨린 운명적 대결의 구도는 실로 신라가 거치지 않으면 안 될 통과의례임을 알았기에 이미 불교가 자리 잡은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조차 왕이 찾아 나선 동서남북의 호국신을 불순한 것으로 쓰지 않았다. 一然은 바로 그러한 모습을 당대 사회의 것 까지 포함해 적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와의 습합이며 그런 점에서 민간신앙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三國遺事』를 살펴보면 그 소재된 내용 전체가 神佛習合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안에서 외래 불교문화와 접촉하며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가는 습합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엿볼 수 있다. 「仙桃聖母隨喜佛事』에서 신라사회가 외래 종교인 불교를 수용하면서도 재래신앙인 신모, 천모, 천신, 오악신도 함께 신봉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阿道基羅」에서 天鏡林에 세워진 大王興輪寺의 사실을 적고 있으며,「滅身」등에서 신라사회가 외래 종교인 불교가 王道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민간에서 포교되기 시작하여 약 1세기의 걸친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고 국가에서 공인하는 종교로 자리 잡기까지의 推移를 엿 볼 수 있다. 이것은 신라의 성역이던 곳에 사찰이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데 신라사회는 일단 수용한 불교를 그들의 성역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민간신앙에 외래 종교인 불교를 습합시켜 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습합의 모습은 다른 전적에서도 검증되는 바이지만 특히『三國遺事』는 매우 주목할 만한 습합의식 및 그 실천의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을 좀 더 온당하게 검증할 수 있을 때 민간신앙과 불교의 습합이란 연구과제가 하나의 통사적 전망을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순차적으로 거론하게 될 것이다.

1) 불교와 상관관계가 현저한 민간신앙의 유형에 대한 고찰

2)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이 갖는 의미

3)『三國遺事』에서 드러나는 민간신앙의 검토와 정리

4) 한국불교사에서 민간신앙이 갖는 역할과 그 의미

이 논문은 어디까지나 『三國遺事』속에 내재된 민간신앙과 불교와의 습합관계에 대한 의의를 다루는 것이므로 논의의 비중은 이를 구명할 수 있는 자료의 많고 적음과 그 상관관계의 긴밀성 여부에 따르게 된다. 다만 이러한 제약을 승인하면서도 여기에서 논의되는 습합양상은 우리 한국불교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긴요한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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