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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졌다.
올여름은 두 세 차례의 태풍소식에 사랑과 증오의 물결처럼 더위가 거세었다. 우리는 그저 저 여름의 열기가 차분히 가라앉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저녁에도 더웠던 열기가 태양의 중심부로 몰려간 듯 초가을 한낮의 열기는 더 한층 뜨겁다.

벌써 옛날이 되어버린 대학 때의 그 여름날이 생각난다.
마침 여름방학이라 학과 과목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꼭 필요한 공부를 친구 몇 명과 소그룹으로 선배 한 분을 모시고 하기로 했다.
모임의 리더인 선배는 평소에 내가 잘 아는 명석한 분이셨고, 후배를 아낄 줄 아는 분이라 나는 그 모임의 시작을 몹시 기다리며 들떠 있었다. 모임은 책을 한 권 정하여 일주일에 한 번, 한 명씩 돌아가며 발제하고 같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하기로 했다.
모임의 첫날,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더 선배와 친한 탓에 나는 당연히 선배가 나를  우위에 둘 것이라 생각했었다. 또한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이 공부가 되어있다고 자부하던 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웬걸. 선배는 나의 서투른 논리를 냉정하게 나무라셨고, 내 보기에는 다소 어눌하고 나약한 듯한 친구를 두둔하며 모임을 이끌었다. 비록 겉으로 강하게 보이나 속으로는 그 친구보다 더 나약했던 나는 선배가 못내 서운하고 미웠다.
두 번째 모임에 나는 나가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는 선배를 위해, 속상한 나를 위해,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라고 혼자서 명분을 만들어가면서 그 시간을 죽여 버렸다.
나는 모두가 나에게 모임에 나오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모임에 나가지 않으리라고 자존심을 완강하게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 봐도 한사람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처음에 서운했던 감정이 그룹에서 도태되었다는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 모임에도 나는 나가지 않았다. 이미 나는 그 모임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여전히 모임에선 연락이 없었고 나 역시 섭섭함도 즐거움도 없이 자취방의 더운 열기 속에서 한없이 추락하고만 있었다.
네 번째 모임에도 당연히 나는 나가지 않았고 여름 방학 중의 그룹 스터디는 마무리 단계일 터였다.
이미 내 손에는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이라고 때 늦은 후회를 혼자 하고 있을 때,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예의 그 친구가 찾아왔다. 다음 주에 우리 모임은 끝이 나므로 꼭 참석해달라는 선배의 전갈을 들었다. 친구의 표정은 어두웠고 목소리도 맑지 않았다. 그동안 왜 나오지 않았냐는 물음도 없었다. 참 이상했다.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마지막 모임에 참석했다. 한 권 분량의 공부는 족히 다 끝냈을 것이고 뒤풀이만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즐거이 친구들과 함께 해 주리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첫날처럼 나의 예상은 빗나갔고, 나는 또 놀라고야 말았다.
내가 참석했던 첫 단원의 다음 단원, 즉, 응당 둘 째 주에 했어야 할 두 번째 단원을 누군가 발제했고, 다 같이 토론했고 그렇게 여름방학의 소그룹 공부는 어이없이 끝이 났다. 내가 없는 동안 그들은 내가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면서 공부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내가 영문을 묻기도 전에 선배가 말문을 열었다.
아주 작은 소그룹 모임도 한 배를 탄 공동체인 까닭에 구성원 중 단 한 명의 낙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가르침이었다.
조직체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한 마음으로 같이 가야하는 것이 지식보다 앞선다는 선배의 말씀에 나는 급기야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의 자만과 이기심은 얼마나 추악했던가, 그룹의 친구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그동안 친구들이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선배가 우리들에게 공동체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려는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그날에야 알았다.
내가 스스로 공동체라는 것을 자각하고 다가가기까지 기다려준 그 선배의 가르침은 내 학창시절의 가장 소중한 배움의 추억이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크고 깨달을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어른인 까닭이다.

나는 지금, 보다 큰 그룹인 국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국가 외교상 안보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작고도 미약한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으나,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인 국민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참여할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려 주는 것이 폭력적인 위협보다 더 값지고,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가장 첫 단계이면서 마지막까지 해야 하는 기본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국가여, 소수의 국민들에게도 기다림의 미덕을 베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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