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내 마음에 태풍이 불다

태풍이 불어온다고 기상특보가 알려졌다.

태풍이 분다는 삼 일 전부터 내 몸도 습한 기운을 예감해서인지, 화기가 오르더니 들뜨기 시작하고, 그 동안 묻어두었던 일들이 죄다 부풀어 올라, 급기야 분통 터지기 시작했다. 내 몸 안에서 먼저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가장 심하게 불쾌했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라 싫은 추억을 되씹게 하더니, 다음에는 내가 남을 상하게 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자책감에 시달리게 하다가, 그 다음엔 애착이 심했던, 그러나 지금은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흡사 지옥 같이 괴로웠다. 역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나보다.

잃어버린 사람, 실은 잊고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다 깨어나길 수차례. 악몽 속을 헤매다 눈을 떠보니 새벽 한 시였다. 누워있는 목 언저리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세찬 바람이 낡은 집을 사납게 흔들고 있었다. 어수선한 마음을 이겨보려고 억지로 또 잠을 청했다. 다시 깨어난 때는 아침 여섯시다.

날이 밝아오자 바람은 여전히 사나웠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마음 가는데 몸 따라 가는 줄 알았더니 몸 따라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은 더 그러하다.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의 방벽이 허술해지는 까닭인지 노래를 불러 마음을 바꾸려 해도 그리 쉽지가 않다.

세상을 대청소하는 태풍에 내 마음도 대청소하는 중이다. 마음의 때를 벗기려니 몸도 아프고 힘이 든다.

비바람이 드세어서 집밖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아,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한 귀퉁이에 버려져있는 빈 장독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몸뚱이나 장독대나 지수화풍으로 빚어진 것은 매한가지라서 나는 틈만 나면 장독대를 들여다보곤 한다.

빈 장독에도 빗물이 가득 차고 세찬 바람에 출렁거린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먼지들이 죄다 올라와 독 안을 온통 뿌옇게 흐려놓았다.

이렇게 태풍은 내 몸도 흔들고, 내 마음도 흔들어 내 정신까지 흐려놓은 것이다.

독안의 물이 출렁거리며 넘쳐흘러 고여 있던 맨 밑바닥의 작은 먼지마저 깡그리 토해낸다.

내 마음의 먼지들도 태풍에 흔들리고 넘치다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휩쓸려 떠내려간다. 지난 시간에 내가 차마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잡아 두었던 기억들이다. 벌써 아득하다.

태풍이 점점 잦아들다가 멈추었다. 고요하다. 하니, 몸이 편안하다. 빈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듯 가볍다.

햇빛이 참 밝게 비친다.

이런 날은 마냥 새날이어서 가만히 눈 감으면 빈 몸과 마음에 맑은 정신이 깃들 것이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copyright ⓒ 2007 우리불교신문, 우리불교 WTV All re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16 대형빌딩 2층/ 팩스 02) 6442-1240 /

전화 02)735-2240 /  메일: woob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