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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시의 만남

한글 선시(禪詩)의 현대적 활용(1)...김형중(동대부중 교법사)

 

‘한글 선시’란 문학용어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선시(禪詩)란 으레 한시로 된 형태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문학에서 선시란 영역이 생겨난 것도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선시라면 불교와 관계된 모든 시를 통틀어 일반적으로 불가시(佛家詩)라고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 와서 인권환, 이종찬을 필두로 선시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서규대, 이진오, 김형중, 박재금, 배규범, 이상미 등이 그 뒤를 이어 선시문학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선시문학이 한국문학사에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러나 비평문단에서는 아직 틀이 서 있지 않은 듯싶다. 선시는 선가시(禪家詩)를 말한다.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수행공동체를 선가라고 한다.

선시란 참선 수행을 하는 과정이나 깨달음의 오도(悟道) 경계를 표현한 시이다. 따라서 선시에는 산사의 고요한 풍경과 선적인 분위기를 읊은 산거(山居) 운수시(雲水詩)도 포함된다.

선시(禪詩)는 시(詩)와 선(禪)의 만남이다. 선시는 범불교적 종교시가 아닌 불교 선종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정신적 경지를 표현한 운문문학이다.

시가는 선종 사상이 흥기하기 이전의 중국 역사에 이미 장구하게 흘러왔으나, 그때는 시와 선의 연계가 필요치 않았었다.

그러나 선종사상이 중국에서 유행된 이후부터는 많은 문예가들이 시와 참선의 긴밀한 연계를 맺게 되었다.

선종은 당대에 크게 흥성하였으며 많은 시인들이 선종의 영향을 받았고, 시를 창작함에 있어 선의 묘오(妙悟) 경지를 수용하여 원선입시(援禪入詩)로 선미(禪味) 농후한 시를 읊게 되었다.

당나라 사공도(司空圖)의 운외지치(韻外之致), 미외지미(味外之味) 시론은 사람들에게 명확한 시선일치(詩禪一致)이론을 인식시켰고, 후세 중국 문예 이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선종은 고도로 발전하면서 더욱 광범하게 유행했고, 사대부에까지 선의 풍류가 일어 시와 선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언어의 절제와 응축, 그리고 상징을 중시하는 면이 시와 선에 공존하고 있다. 선은 직관을 중시하고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초월 언어가 상징으로 나타나면 곧 문학이 되는 것이며, 이런 경우 선승(禪僧)의 게(偈)는 시문학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오도를 목적으로 하는 불교 문학의 절정은 선시이다. 불교적 철학이나 사상을 산문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 직관적인 면에 있어서의 힘은 선시문학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선을 통하여 얻어지는 고요한 마음은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에서 사물의 속성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시화(詩化)하는데 촉매작용을 한다. 또 선의 돈오적(頓悟的) 사유방식은 시 창작에 있어 번득이는 영감을 제공해 준다.

 선 체험으로 얻어진 무한한 정신세계와 정제된 심리상태는 묘오(妙悟)와 여유, 함축 그리고 의경(意境)을 표현한다. 선어(禪語)의 상징성과 함축, 그리고 논리 구조를 초월한 선구 언어(禪句言語)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존 관념을 넘어 무의식 세계, 깨달음의 세계까지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창조 ․ 혁명적인 언어 구조로 재조직되었다.

선이 시로써 문학이 되었고, 시가 선으로써 사상과 깊이를 더해 갖춘 지고한 격조의 시 세계를 창출하였다. 청대 원호문(元好問)의 말처럼 선은 시인에게 좋은 칼을 다듬어 주었고, 시는 선에게 비단꽃을 덮어 주었다. 선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언어문자를 부정하는 선종의 교리나 사상을 심오하고 응축된 시어로 정제하여 보존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으레 한시에는 엄격한 형식과 율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가의 시는 게송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시의 엄정한 격률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자연과 진정한 대화를 이루려면 무심의 경지, 물아일체가 되어 삼매에 이르러야 그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직관과 돈오에 의한 깨달음은 기존의 고정 관념을 타파하여 창조적 사유방식과 단도직입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뼈를 깎는 구도심과 자유무애(自由無碍)한 시심(詩心)은 깨달음을 통한 자유, 해방, 한가, 여유로 드러나 작품을 통해 여백미와 정밀미(靜謐美), 미외미(味外味)의 미학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모든 문화현상은 언어문자로 기록되고 사유마저도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문자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선 또한 마찬가지로 소위 불리문자(不離文字)요, 인언현리(因言顯理), 의언진여(依言眞如)이다. 그러나 선가의 언어는 지극히 압축되고 고도로 상징화한, 비약적이고 역설적인 반상(反常)의 언어이다. 일언지하(一言之下) 돈망생사(頓忘生死)하고 일초직입(一超直入) 여래지(如來地)하는 촌철살인적 언어이다.

논자는 여기에서 만해 한용운을 한글 선시의 효시로 보고, 그의 시 가운데서 선적인 풍치가 있는 한글시를 몇 편 골라서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시성 미당 서정주와 시승(詩僧) 무산(霧山) 조오현(曺五鉉)의 선시를 통해 한글 선시가 그 맥을 이어오면서 발전한 과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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