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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선시(禪詩)의 현대적 활용(4)...한글 선시의 모델을 제시한 조오현의 선시 세계

김형중(동대부중 교법사) 

   

소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존재이다. 농경문화의 상징으로 목가적 전원 풍경과 평화와 여유를 상징한다. 소는 불교 경전 속에 자주 등장한다. 지금도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고 있다.

무산 조오현의 시집 《심우도(尋牛圖)》에 나오는 〈무산 심우도〉 10수 가운데 첫 번째 시 〈심우(尋牛)〉는 다음과 같다.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을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이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 -〈심우〉에서

흔히 《십우도(十牛圖)》에서는 소(牛)를 상징으로 하여 찾아가는 과정으로 묘사하는데, 조오현의 〈무산 심우도〉는 잃어버린 본래 마음을 찾는 과정을 아예 소는 없고 전혀 다른 시적 구상을 통해 창조적으로 마음을 찾아가고 있다. 그는 마음 찾는 공부를 달아난 도둑을 수배하고, 현상금을 걸어 놓고 수사, 체포하는 과정으로 읊고 있다. 도둑은 용의주도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또한 도둑놈의 마음을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심우〉1연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는 옛날 형벌 중의 하나인 죄인의 이마에 죄인의 표시로 인둣불을 지지는 형벌로 표현하였다. 2연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찾아 나선 것을 죄인(도둑)을 수배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3연 “천만금 현상으로 찾지 못할 내 행방을”은 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찾겠다고 수배하고 천만금 현상금까지 걸어 놓았지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4연에서 마음을 화살로 상징하여 표현하고 있다. 화살을 빠르게 흐르는 세월에 비유하는 경우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으로 상징한 것은 참으로 특이하다. 마음이 빠르게 나는 화살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라서 그렇게 표현했다. 화살은 마음을 상징한다. 세월을 나는 화살에 비유한다. 화살처럼 빨리 흐르는 세월이란 뜻이다. 마음을 화살로 상징한 것은 대단한 비약이요, 상상이다.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은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의 천안통(天眼通)으로도 볼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읊은 것으로, 확암(廓庵)선사가 《십우도》〈제8, 사람도 소도 다 잊다(人牛俱忘)〉에서 게송 앞에 쓴 서문에서 “관세음보살의 천안이라도 엿보기 어려워라(天眼難竅)”고 한 것에서 용사(用事)되었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은 부처님의 몸이 보통 사람과 다른 뛰어난 특성이 32가지가 있으니 이는 곧 삼십이상(三十二相)이다. 삼십이상 가운데 아홉째가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팔이 무릎까지 내려가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도 잡지 못할 마음이란 뜻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는 소머리를 쳐서 죽이는 도살장의 소 도끼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은 우리의 마음(화살) 밖에 없다. ‘찾는다’는 말을 ‘도둑질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 마음 깊은 곳 여래장식(如來藏識) 속에 숨은 부처의 보주(寶珠)를 밤을 새워가며 찾는 수행자도 밤바다 용의주도하게 남의 집 보물을 터는 도둑과 같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는 〈심우도〉의 소가 도살장에서 소를 잡는 쇠도끼로 나타났다. 쇠도끼를 먹고 달아난 도둑놈인 자신의 마음을 찾으라는 뜻이다. 시가 전혀 모방이 없는 창조적이다.

《십우도》의 꽃은 마지막 10단계인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인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십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는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이다. 즉 보살송(菩薩頌)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천 명의 성인도 알 수 없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흙투성이 얼굴을 하고 저자거리로 나왔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통하고, 아름답고 기적 같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하는 기적이다.

〈무산 심우도〉의 마지막 〈입전수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肩帶) 차고 나온 저자

 

장가들어 본처(本妻)는 버리고

소실(小室)을 얻어 살아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일금 삼백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여, 진문둥이여. -〈입전수수〉전문

1연의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는 보살은 중생이 모여 사는 시장 저잣거리가 좋다. 독각불은 고요하고 한적한 난야(蘭若)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시장의 생선 비린내가 좋고, 전철 속의 땀 냄새가 좋다. 확암(廓庵)선사의 《십우도》에서는 그림으로 포대화상이 중생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가득 담은 포대를 걸치고 육중한 몸매로 여유 있게 나타나는데, 무산은 장사꾼이 어깨에 걸치는 작은 돈가방인 견대로 바꾸어 표현했다.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는 인간사 일 중에 가장 세속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이 장가들어 부자가 되면 못생긴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고 예쁜 계집을 소실로 얻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백일몽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탐욕스럽고 앙큼한 망상이다. 인간 세상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는 보살행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 발바닥에 붙은 나막신마저 가난한 이웃에게 보시해 버리는 사람은 마음이 큰 부자이다. 모든 인간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큰 사람이다. 거추장스럽게 발바닥에 붙은 집착을 떼버린 도인이다.

2연은 더욱 파격적인 표현이고, 역설적이다.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는 인간의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이 마누라에 대한 집착인데, 이런 경지는 완전히 세상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버린 것이다. 이것은 파계가 아니다. 석가모니의 《전생담》에 보면 그가 보살로서 인행(因行)을 닦으실 때 자기의 자식과 부인까지 모두 보시하는 한없는 무주상(無住相) 보시행이 나온다.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역시 분별과 차별심을 모두 끊고 중생과 하나가 되는 공(空)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심과 차별심을 일으킨다. 그러니 두 눈을 빼버리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이것이 보살의 공관(空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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