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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선시(禪詩)의 현대적 활용(3)...인생의 철리를 선시로 노래한 서정주

김형중(동대부중 교법사) 

 

우리는 또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나타난 선 사상을 만날 수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었어야 하고, 초가을 간밤에는 무서리가 내렸다. 가을 국화가 피어나는 데는 온갖 시련과 풍파가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인연들의 도움 공덕이 있었다. 수많은 병고를 이겨냈고, 무수한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극복해낸 결과물로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인타라망처럼 무수히 얽히고설킨 인연(因緣) 연기(緣起)와 중중첩첩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재(存在)하는 인과(因果)의 세계 속에서 내가 여기에 서 있고 우주 만물이 그렇게 존재해 있는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과 황토색 포근함으로 시골 언덕길에 피어난 황국화 같은 40-50대 여인 또한 젊은 날에 가슴 조이던 파란만장한 풍파를 헤치고 천신만고 끝에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리석고 고통 속에서 헤매던 중생이 수행을 통해 번뇌를 털어내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봄날 영산홍이 곱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겨울에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겪어내야만 한다. 미당은 가을 황국화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고난 과정을 시간적으로 읊은 것이다. 특히나 가을 국화는 연중 마지막 용트림으로 차가운 서리를 이겨내며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에게 인고(忍苦)의 깨달음을 주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군자화(君子花)이다. 이 시는 불교의 심오한 철학이 바탕이 되어 인생을 노래한 최고의 절창이다.

미당의 〈무등을 보며〉에 나타난 선사상은 다음과 같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중략)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 -〈무등을 보며〉에서

이 시 또한 〈국화 옆에서〉와 같은 시상과 구도를 지니고 있다. 인생이란 어떤 시련과 역경에 처하더라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고고하고 의연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노래한 작품이다. 인간이란 고통의 바다에 던져진 존재이다. 고통의 바다를 무사히 건너서 저 언덕(彼岸)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미당은 이 시에서 광주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닮아서 가난과 배고픔을 극복해야 함을 설법(說法)하고 있다. 이 시는 1954년 8호 《현대공론》에 발표한 작품이다. 미당이 광주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6?25사변으로 인해 경제적 가난과 궁핍함 속에 함몰되지 말고 고고하고 의연한 정신으로 극복할 것을 촉구한 시이다.

〈무등을 보며〉의 시를 살펴보면 당나라 영가 현각(永嘉玄覺)선사의 《증도가》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난 주제시어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도가》에 나오는 다음의 시구를 용사(用事)하였다.

 

“빈털터리 수행자가 가난하다 말하지만 몸은 비록 가난하나 마음만은 부자라네. 가난하여 옷치장은 남루하다 할지라도 도를 이루어 마음속에 귀한 보배 다 갖췄네.

값으로 다질 수 없는 진귀한 것 쓰고도 남음이 있어 인연따라 아낌없이 모든 이익 다 베푸네.?-《증도가》에서

 

시 〈무등을 보며〉는 시 전체에 흐르는 시상과 주제가 《증도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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