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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선시(禪詩)의 현대적 활용(2)...한글 선시의 선구자 한용운의 선시

김형중 (동대부중 교법사)

 

만해(萬海)는 한국 근대사에서 최대의 인물이다. 3?1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로서, 문학사에서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을 낸 시인으로서 일제에 조국을 잃어버린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잃어버린 님을 찾아 다방면에서 전인적 역할을 다했던 진기충인(盡己忠人)이요, 의인이었다.

만해는 한문과 한글로 자유자재하게 글과 시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국문학사에서 한시에서 현대시(한글시)로 옮겨오는 과도기에 있어 징검다리 역할을 한 시인이다.

만해의 시조는 ≪한용운전집≫(1978년판) 1권에 39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조에도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선시가 <춘주> 2수이다.

 

따스한 별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춘주〉전문

 

<춘주>는 원래 ≪불교≫ 96호 (1932년 6월 발행) 권두언으로 발표된 것이다. <춘주>는 불립문자인 선의 특성을 시적 미감을 통해서 멋지게 나타낸 시조이다.

<춘주>는 최동호 편 ≪한용운시전집≫(1989년판)에는 시의 제목을 <춘화(春畵)> 라고 되어 있는데, <춘화: 그림 같은 봄날>보다는 <춘주(春晝): 봄날의 낮>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 맞다. 더구나 시조 <춘조(春朝)>가 있는 것으로 보아 따사로운 봄날 아침과 낮에 쓴 시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춘주>는 “따사로운 봄날 낮에 ≪유마경≫을 읽는데 바람에 나는 꽃잎이 글자를 가린다”로 시작한다. 처음에 붙인 제목 <공화란추(空華亂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꽃[空華]’은 허공에 핀 꽃으로 본래 실체가 없는 번뇌 망상을 상징하는 선어이다. 번뇌 망상을 없애고 진리의 길에 이르는 길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인 참선의 체험뿐이다. 그러니 구태여 꽃 밑의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선의 세계를 시화한 것이다. 봄날에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초?중장에 서술되고 종장에 이르러는 한흥(閑興)이 결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초장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는 고요한 봄날 향을 피워 놓고 단정히 앉아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중장 “삽살개가 꿈을 꾸고 거미가 줄을 친다”고 한 것은 삽살개도 따스한 봄볕 아래 참선하듯이 졸고 있고, 거미도 자신의 본분사인 거미줄을 치고 있다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이 각기 불성을 발휘하고 있는 화엄성기(華嚴性起)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 거미는 자기가 친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자유로워, 무애한 해탈 자유를 상징한다.

종장에서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결구한 것은 선시 이론의 극치인 뜻을 글자 밖에 나타내는 운외지미를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산 너머에 꾸꿍이 소리를 따라 깨달음, 봄의 정취가 들려오는 듯하다.

만해는 펼친 일제하의 시조 운동은 한글 즉,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민족의식의 고취한 활동이었다.

≪님의 침묵≫에서 ‘님’의 정체는 ‘부처’, ‘중생’, ‘조국’, ‘깨달음’, ‘불성’, ‘애인’, ‘자유’, ‘독립’ 등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어이다.

≪님의 침묵≫ 가운데 가장 불교의 자비사상이 드러난 시가 <나룻배와 행인>이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중략)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나룻배와 행인〉에서

 

<나룻배와 행인>은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살면서도 부처님의 은혜를 모르고, 저버리고 배반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날마다 스스로는 낡아가면서 그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대승 보살의 대자대비한 마음을 읊은 시이다.

‘나’는 석가요 불법, 보살을 상징함이고, ‘당신’은 중생이다. 나룻배는 반야용선이다. 중생을 생사고해를 건너서 피안의 언덕으로 실어다 주는 지혜의 용선이요 자항(慈航)이다.

<선사의 설법>에서도 대승 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 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이운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선사의 설법〉전문

 

<선사의 설법>은 만해의 혁명적인 선 법문이다. 선이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창조적인 인식의 전환을 추구한다. 공의 세계에서 사물을 정견할 때 올바른 인식작용이 가능하도록, 맑은 선정의 연못에 달이 비치듯이 반야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고통을 면할 수 있음을 서술한 것이다.

선사의 설법을 부정하고 ≪화엄경≫의 사사무애법계에 입각한 대승선 법문을 하고 있다. 만해의 시에서 부정과 역설적 표현이 그의 시에 특징이다. 번뇌가 깨달음이고, 중생이 부처이다. 만해는 잃어버린 조국에 살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임을 되찾아야겠다는 역사의식을 확고히 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고 고통스런 일이다. 선사상에서는 집착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시 말해 조국에 대하여 외면하고 무심해 버리면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다. 그러나 만해는 임을 사랑하는 밧줄을 끊을 수가 없다. 더 고통스럽더라도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여서 언젠가는 잃어버린 님을 되찾겠다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활선(活禪)을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라고 읊은 것이다.

<선사의 설법>은 일심으로 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하여 독자에게 짜릿한 감동을 주는 수준 높은 한 편의 불가의 설법시 즉, 선시이다. 근래에 전보삼, 이인복, 손종호, 김광원 등은 《님의 침묵》이 《십현담주해》의 내용과 깊은 상관성이 있음을 연구하여, 만해의《님의 침묵》이 선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선시임을 주장하고 있다.

만해의 불교정신 그리고 은유법, 그리고 상징과 역설 등을 통해 엮어내 선시 작품세계는 서정주와 조지훈, 고은, 조오현 등의 시에 계승되어 한국시의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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