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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진다

목련꽃이 지고 있다.

머리를 구름처럼 틀어 올린 궁장차림의 여자가 옷을 벗고 있다.

여자의 진한 살 냄새가 훅 풍긴다. 꽃의 살아온 내력이 향기가 되어 흩어진다.

나비가 나뭇가지 끝에서 발끝으로 춤추다가 나비 본래의 모습으로 흙 위에 살포시 내려앉듯이, 목련꽃이 지고 있다.

꽃이 피어날 때는 사람의 눈을 온통 빼앗더니, 다하고 나니, 사람의 코를 또 빼앗으며 가고 있다.

목련나무로서는 입이 없으니, 말할 수도 한탄할 그 무엇도 할 수 없어서인지, 대신에 새가 앉아 노래하며 사람의 귀까지 뺏어간다.

사람도 젊어서는 몸을 온통 화려하게 치장하여 남의 시선을 끄는 것으로 자랑삼다가 그도 다하면 가만히 옷을 벗고, 그도 다하면 몸까지 벗고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삶의 향기란 죽을 때 알 수 있다고 한 것 같다. 나무의 침묵의 의미도 꽃이 질 때 알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때, 침묵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한 어른은 무조건 입을 닫으라했고, 젊어서 듣는 귀가 없어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쉴 새 없이 말하고 싶었다.

한동안 말이 없는 사람을 쫓아 다녀 봤지만 늘 돌 같은 침묵, 말이 굳어서 딱딱해진 벽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답답했다.

다음에는 내가 며칠 입을 다물어보니, 내가 죽어가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 나를 죽이라는 말로 침묵을 잘못 해석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침묵으로 벽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여 서로 살게 하는 것은 말이지 침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와 일행들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데도 그 분은 빙그레 웃으면서 듣기만 할 뿐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분을 나무 조각처럼 앞에다 앉혀놓고 우리는 우리끼리 제 마음대로 까불다가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열린 침묵.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서야 나를 버리고 상대를 온전히 껴안는 마음이 참된 침묵이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침묵으로 마주한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 안아 살게 한다는 것을 겨우 깨우친 셈이다. 그분은 침묵으로 나에게 큰 소리로 말을 한 것이다.

목련꽃이 지고 있다.

수목원을 산책할 때마다 그곳에 서 있는 목련 앞에 마주 서서 말없이 바라보는 일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그래서 나는 저 나무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잎이 막 피기 시작하면 나도 따라 피어나고 꽃이 질 때면 나도 따라 꽃과 같이 이운다.

목련꽃이 말없이 나에게 말을 건네면 나도 따라 말없이 대답한다.

말없이 목련꽃 진다.

내 몸이 침묵으로 어두워진다.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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