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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타는 불을 쬐는 습관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계속되었다. 비가 오다가 그쳤다가 햇볕이 내리 쬐었다가 그쳤다가 먼지바람이 일다가 그쳤다가 해서 집밖을 나서려다 말다가 엉거주춤 거리다가 급기야 갈 곳이 없어서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숯가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장작불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몸이 훈훈해지니까 굳어있던 표정들이 슬슬 풀리면서 봄 나뭇잎처럼 입술을 들썩이다가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누가 어디 아팠다가 어떻게 나았다든지 누구는 자식걱정에 힘들었는데 잘 살게 되었다든지 빤한 이야기를 하다가 몸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쯤이면 저마다 아픈 곳도 대충은 눅여졌는지 요즘 티브이 연속극 주인공이야기로 쏠리다가 자리를 뜬다. 어느 정도 급한 근심은 풀린 모양이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 파묻혀 나는 한 친구를 생각했다.
친구는 암환자였음에도 간병인을 자처하고 자원봉사를 일주일에 몇 시간씩 규칙적으로 거르지 않고 거의 십여 년을 지속했다. 거기다 독거노인 점심 마련하는 일과 나르는 일도 매한가지로 열심이었다.
그 친구는 항상 기도를 하면서 살았는데도 병마는 이길 수 없었는지 어느 날은 병든 닭처럼 눈곱이 끼고 누렇게 뜬 얼굴로 비실비실 나를 찾아와서는 어디 같이 놀러가잔다. 그때도 나는 친구를 숯가마 장작불 앞으로 데려갔고 몸이 따뜻해지자 과도하게 항암제를 투여한 결과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려서 머리통을 전체 박박 밀어버린 모습에 눈썹까지 듬성듬성 빠져 눈썹 문신을 한 채로 어릿광대처럼 한참이나 서러운 이야기를 하다가 몸이 따뜻해지자 아프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 후로 오륙 개월 소식이 없자 나는 그 친구를 영영 잃어버린 줄 알고 엄마를 잃은 그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고 의외로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주 생생하고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대뜸 나랑 만나잔다. 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다고 얼굴 좀 보잔다.
만나서 병이 나은 연유를 듣고 보니 그동안 입원을 했었고 기도 덕분에 차사를 물리쳤다한다. 의아해진 내가 주위의 어른께 여쭤 보았더니 그 친구가 선한 공덕을 많이 쌓아서 가피를 입은 것이란다.
어떤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몰라도 평상시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살린 덕분에 그의 목숨이 더 늘어났나보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무지하고 맹목적인 믿음일지 몰라도 여하튼 그랬다.
나는 장작불을 쬐는 것이 더 없이 행복하다. 나무 타는 냄새가 나를 진정시켜준다. 나무는 죽어서도 사람을 위한다지 않는가.
내가 병들었을 때, 내가 내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과 좌절로 고통스러웠을 때, 나는 무엇보다 우선 나무 앞에 다가서고 본다. 나무의 온기를 만지고 살아가는 희망을 찾는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심을 줄 모르는 내가 말이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남을 돕기 전에 네 자신이나 먼저 지키라고 빈정거렸던 내 목소리가, 그가 없는 지금 내 귀에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사람이 나무가 타는 불을 쬐는 습관은 항상 햇빛을 품어 희망을 갖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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