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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와서 좋은 날

눈이 온 아침이다. 나는 차를 집에다 세워 놓고 여느 때 보다 일찍 집을 나선다.

눈길을 걷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함이다. 걷는 것이 싫증나면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맛을 즐기고 버스를 타는 맛을 즐긴다.

만원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분위기는 눈길을 걸을 때의 그 알싸하고 깨끗한 그것과는 영 딴판이다. 갖가지 생활의 찌꺼기가 묻어있는 냄새가 한꺼번에 뒤범벅되어 비릿하다.

문득 내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 것일까,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주변의 표정을 둘러본다.

순간 내 스스로가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들이 제일 비위에 거슬린다. 나 자신이 추악한 짐승 같아서 어깨를 움츠린다.

부끄러운 나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다. 순간 당황한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탄다. 택시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를 즐기는 시간이다. 대중가요는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구를 떠오르게 한다. 입만 열면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하였던 아이. 유행가는 여전히 사랑 타령 일색이다. 사랑이라 ……, 사랑이 있었지, 아니 사랑이 있기는 한 것인지?

늙수그레한 택시 기사가 입을 연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 거기요. 아이구 너무 멀어서 택시를 타야하고말고요. 이런 날 걸어 다니다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어요.

눙치는 솜씨가 좋다.

그래도 걷는 것이 건강에 제일이죠. 걸어서 가실래요? 제 돈벌이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재밌다. 가난한 옷차림에 성실한 땀 냄새가 물씬 풍긴다.

건강이 최곱니다. 저도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줄넘기 삼천 번 하고 샤워하고 아침 먹고 일하러 나옵니다. 그렇게 생활한 지 이십 사 년 됩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안주인께서 그 시간에 아침 차려드리기가 쉽지는 않으셨겠네요.

기사가 대답한다.

아니요, 저 혼자 차려 먹습니다. 집사람이 그 시간에 깨어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아침 밥 차리라고 집사람을 깨워 본 적이 없어요.

안주인께서 바쁘신가 보죠? 내가 물었다.

아니요, 살림 말고는 아무 일도 안 합니다. 돈이야 내가 벌죠. 나하고 살아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어떻게 일까지 시킵니까?

참 즐겁다. 내가 잠시 잊었던 말이다.

내 곁에 있어준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꽤 오래도록 하지 않았다.

일상에 묻혀 고이 봉해둔 말 같다.

‘당신이 내 옆에 살아 있어주어서 고맙다!’

눈 내려서 생긴 불편으로 축복을 받는 날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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