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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梵本 법화경 제15장 여래가 가진 수명의 길이―

1, 부처님(眞理)의 본체(本體)(3)

전호에서  응신은 보신의 구체적 발현(發現)의 모습이므로 보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응신이 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법 ․ 보 ․ 응의 3신은 원만하게 상즉(相卽)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것을 3신즉1(三身卽一)이라고 하는데, 3신즉1(三身卽一)면서 그 가운데서도 보신을 정(正)이라고 하는 것이 지의(智顗)의 구원의 본불에 대한 해석이다. 이것은 구원의 본불을 단순히 법신의 상주불변성이라는 관점에서 만이 이해하는 해석에 대해서 응신의 활현(活現), 즉 중생제도(衆生濟度)라는 구체적인 작용을 중시한다는, 이해의 입장의 전환(轉換)이다. 이 점이 종래의 지의(智顗) 이전의 해석과의 커다란 차이(差異)인 것이다.     
 그러나 지의(智顗)는 법신상주설(法身常住說)에 입각하여 법화경의 상주성(常住性)을 불완전하다고 한 법운(法雲)에 대항하기 위해, 법화경에도 상주(常住)가 설해져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 때문인지, 구원의 본불을 「보신위정(報身爲正)」이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또 상주법신(常住法身) 바로 그것이다. 라고 하여, 법신위본(法身爲本)이라는 구래(舊來)의 해석에 끌어당긴 점이 있다. 역시 지의(智顗)와 똑같이, 법화경에 상주(常住)가 설해져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여 구래(舊來)의 남조열반학파(南朝涅槃學派)에 대항한 사람에 가상대사(嘉祥大師) 길장(吉藏)이 있다.
지의와 길장의 2대석학(二大碩學)에 의해서 법화경의 상주성(常住性)이 주장되었기 때문에, 상주성이라는 관점에서 법화경보다 우위(優位)에 놓여지고 있던 열반경의 그 지위가 전락(轉落)하고, 그 때문에 남조열반학파(南朝涅槃學派)가 중국불교사상(中國佛敎史上)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지의(智顗)의 보신(報身)을 정의(正意)로 한다는 해석은 구체적인 현실의 중시(重視)라는 관점(觀點)에서 이룩된 것이지만, 이것을 다시 한 걸음 적극적(積極的)으로 밀어붙인 것이 일본(日本)의 니찌렌(日蓮)이다. 니찌렌은 지의(智顗)가「보신위정(報身爲正)」이라고 한 해석을 다시 철저적(徹底的)인 현실(現實) 중시(重視)라는 입장에 서서 「응신위정(應身爲正)」을 주장(主張)했다. 응신(應身)이란, 이 현실 속에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작용(作用)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처님으로서, 이 응신(應身)의 출현(出現)이 있어서야 만이 부처님의 진리(眞理)의 나타남인 법신(法身)이 알려지고, 또 그 응현(應現)의 근본(根本)인 보신(報身)도 알려지는 것이다. 응신(應身)의 중생구제(衆生救濟)의 작용(作用)은 부처님의 자비(慈悲)가 있는 한, 과거(過去) ․ 현재(現在) ․미래(未來)의 3세(三世에 걸쳐서 중생(衆生)에게 응동(應同)하여 처처(處處)에 출현(出現)하고 그 작용(作用)을 그칠 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응신(應身) 그 自體도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의(智顗)는 보신(報身)을 정의(正意)로 한다고 했으나, 그 보신(報身)은 유시무종(有始無終)이며, 응신(應身)은 유시유종(有始有終)이었다. 그러나 지찌렌(日蓮)은 응신(應身) 그 자체(自體)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며, 따라서 보신(報身)도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하여 응신본불설(應身本佛說)에 선 것이다. 니찌렌(日蓮)의 이 입장은 현재(現在)의 구체적(具體的) 현실(現實)의 한 가운데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의 모습을 보려고 한 것이어서,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에 대한 해석(解釋)은 여기에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법화경(法華經) 그 자체(自體)에 되돌아가보면, 법화경(法華經)에는 법(法) ․ 보(報) ․ 응(應)의 3신설(三身說)은 없다. 또 본불(本佛) ․ 적불(迹佛)이라는 말도 없다. 다만 법화경은 눈앞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가야성(伽倻城) 부근(附近)에서 처음으로 성도(成道)한 것이 아니라, 구원(久遠)의 옛날에 성도(成道)하여, 무량(無量)한 수명(壽命)을 유지(維持)하며 지금에도 법(法)을 계속(繼續) 설(說)하고 있다고 설(說)하는 것이다.  
 그리고 멸도(滅度)를 취(取)한다는 것도, 중생교화(衆生敎化)의 방편(方便)으로서 임시(臨時)로 그 모습을 확실(確實)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참으로 멸도(滅度)에 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未來)에 있어서도, 언제 어떠한 때에도, 부처님을 간절(懇切)히 구(求)하는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종래(從來)의 해석(解釋)은 법화경(法華經) 이후(以後)에 성립(成立)한 불신론(佛身論)의 개념(槪念)을 가지고 법화경(法華經)을 해석(解釋)한 것이며, 그와 같은 해석이 법화경(法華經)의 참뜻(眞意)을 과연 바르게 파악(把握)하고 있는가 하는 점(点)에 문제(問題)가 있다.  본불(本佛) ․ 적불(迹佛)이라는 파악 방법도 적불(迹佛)을 가치적(價値的)으로 본불(本佛)보다 한 단계(段階) 낮은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법화경(法華經)의 바른 이해(理解)이지는 않을 것이며, 법(法) ․ 보(報) ․ 응(應)의 3신설(三身說)이라 하여도 법신상주(法身常住)라는 점(觀點)에서 보아 법화경(法華經)에서 말하는 상주(常住)의 불완전성(不完全性)을 문제(問題)로 삼거나 하는 것은, 법화경(法華經)의 원의(原意)에서 현저(顯著)하게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량품(壽量品)」에서 설(說)해진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은, 현실(現實)의 목전(目前)의 석존(釋尊)이 그대로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한 영원(永遠)한 부처님임을 설한 것이다. 그 의미(意味)에서는 니찌렌(日蓮)의 해석(解釋)이 가장 법화경(法華經)의 원의(原意)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의 개현(開顯)에 의해, 모든 부처님이 석가일불(釋迦一佛)에 귀일(歸一)되고, 게다가 그 석존(釋尊)은 구체적(具體的)인 현실(現實)임과 동시(同時)에 보편(普遍)으로서 영원(永遠)한 존재(存在)로서 우리들의 앞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16장 여래수량품」에서는 부처님께서 미륵보살(彌勒菩薩)를 비롯해 이 법회(法會)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들은 극히 깊고 오묘한 여래(如來)의 본체(秘密), 즉 비(秘)는 법(法) ․ 보(報) ․ 응(應) 또는 화신(化身)의 삼신(三身)이 일신(一身)이라는 것이고, 밀(密)은 일신(一身)이 곧 삼신(三身)이라는 말인데, 그와 일신(一身)의 자유자재(神通)한 그 능력(力), 즉 변화(變化)를 자세히 들어라.』하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부처님이란 생신(生身)의 석가모니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님, 다시 말해서 이름 붙일 수 없고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는 진리(眞理)를 임시로 이름 하여 부처님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라는 말도 가명(假名), 즉 일시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왜냐하면 부처님도 실체가 없는 공성(空性), 즉 변해가는 존재(法空)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법(法)이라는 말 그 자체(自體)가 변화(變化)를 전제(前提)로 한 것이다. 이 부처님의 본성(本性)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변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말이 바로 『비밀(秘密)』이라는 말인데, 앞서도 말했듯이 이를 천태(天台)는 비(秘)란, 1신즉 3신(一身卽三身 : 法身․報身․應身)인 것, 밀(密)이란, 3신 즉 1신(三身卽一身)인 것, 다시 말해 1신과 3신의 상즉(相卽)을 『비밀(秘密)』이라 해석하며 『법화문구(法華文句)』에는 「지금까지 설하지 않았던 것을 “비(秘)”라 하고,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는 것을 “밀(密)”이다,」라고 해석한다. 또 삼론종(三論宗)의 가상대사(嘉祥大師) 길장(吉藏)도 그의 저서 『법화의소(法華義疏)』권10에서 말하기를 「지금까지 설한 바가 없는 것을 “비(秘)”라 하고, 그 감춰져 온 법이 매우 깊기 때문에 “밀(密)”이라 한다.」 라고 말하여 천태(天台)의 『법화문구(法華文句)』와 그 해석(解釋)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법상종(法相宗)의 자은대사(慈恩大師) 기(基)는 『법화현찬(法華玄贊) 권9 말(末)』에 「법신(法身)과 보신(報身)의 2신(二身)의 본성(本性)이 심묘(深妙)하므로 “비밀(秘密)”이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에 「신통(神通)』이란,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는 「법(法) ․
보(報) ․ 응(應) 3신(三身)의 작용(作用)을 『신통지력(神通之力)』으로 해석」하고, 가상대사(嘉祥大師) 길장(吉藏)은 「부처님의 수명(壽命)이 장원(長遠)함을 짧게 나타낸 것이 “신통(神通)”이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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