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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Boajjanga(바른 깨달음의 고리)7각지-3


 7각지의 마지막 조항인 7번째 ‘Upekkha(평등: 우빼까) sambojjhanga’ Upekkha를 생기게 하는 것으로는, 1) 중생들을 Upekkha로 본다. 2) 생기고 사라짐을 Upekkha로 보며
3) 생기고 사라짐에 크게 집착하는 이를 멀리한다. 4) 생기고 사라짐에 Upekkha를 가질 수 있는 이를 의지한다.
 모든 현상은 한결같은 생멸에 있으며, 절대 평등으로 예외적 차별이 없다. 미워함과 좋아함이 고요해짐을 Upekkha의 구족함이라 한다.
세상일에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지내는 것은 Upekkha의 무너짐이다. 중생들은 행복과 고통, 좋고 나쁜것을 알지만, 이 일이 나와 상관없이 그들의 업과 관계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멍청하니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선업 짓기에 게으른 것은 가짜 평등지이다.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모양은 비슷하기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먹어 볼 필요까지는 없다.
 평등지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평등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근본불교 교리 상으로 볼 때, 평등지는 행하고 싶다고 행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니다.
이 수행은 자비관을 통해 3선정을 얻은 이가 4선정을 얻기 위해 행하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즉 4선정인 평등지는 일반인들이 닦고 싶다고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불교는 중도 사상을 중요시한다. 한문 식으로 말하면 中(중)인 것이고, 빨리어로는 Upekkha이다. 승려들이 오래전부터 하도 무심이니 중도니 입버릇처럼 말을 하니, ‘자연스럽게 승려들을 지칭할 때 중이라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추론을 해본다.
 그럼 중이란 표현은 맞는 말일까? 원뜻은 좋지만, 일단 발음상으로는 좋지 않고, 부르는 의미 역시 폄하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여기에 벌컥 화낼 이유는 없다. 부처님께서도 불심이 없는 지방에 가셨을 때 외도들에게 비난받거나 놀림을 받으신 적이 많다. 그러나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으셨다.
개가 짖는다고 꼭 따라서 짖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중이라는 단어에 열을 올리기보다, 진정한 중도를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더 수행자다울 것이다. 그러나 중이라는 단어가 나쁜 표현으로 굳기까지에는 똥인지 된장인지 잘 구분 못하는 이들이 한 몫 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과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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