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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수하무학인기품제9(授學無學人記品 第九)

 

― 아난다[阿難)의 과거사와 라훌라의 밀행(密行) 및 2천인의 학(學)·무학인(無學人)에 대한 예언 ―  (3)

 라훌라가 부처님과 혈연상(血緣上) 의 큰아들이라고 하는 점은 다른 경전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법화경』이 현세에서 세속의 육친관계(肉親關係)로서의 맏아들이라는 것을, 출가(出家)의 세계에  그대로 반영(反映)시켜서 현세뿐만 아니라 과거의 여러 부처님의 맏아들로까지 소급(遡及)시키고 또 다시 미래세에 부처님의 맏아들이도록 하고 있는 것은 이 『법화경』에서 불자(佛子)라는 개념과 더불어 다시 음미해야 할 점이다.
라훌라란 장애(障碍)라는 의미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진리를 구하기 위해 출가하려고 은밀히 생각하고 있을 무렵, 왕자 탄생의 보고를 듣고 무심코 “라훌라(장애)가 생겼다.” 라고 중얼거린 것을 심부름꾼이 슛도다나왕[淨飯王]에게 전했으므로 왕은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않은 채 그렇게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라훌라의 출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설이 있다. 라훌라에게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이 있었다고도 하고 석존께서 <참다운 행복>이라는 유산을 주기 위해서 무리하게 출가시켰다고도 한다.
그리고 출가의 나이에도 이설(異說)이 있으나 그러한 것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기로 하며 아무튼 왕손으로서 궁전에서 태어나 양육되고 또 출가해서도 붓다의 친아들이라고 하는 지울 수 없는 입장에 있던 라훌라가 어떤 수행을 하였으며 비구로서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약간 살펴보려고 한다.
석존께서는 라훌라를 자기 곁에 가까이 둔다는 것은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사리불에게 그 교육을 맡겼던 것이다. 사리불은 어디까지나 라훌라를 하나의 사미로서 취급하여 엄격하게 지도했다. 라훌라도 신참의 일개 사미로서 교단의 규율은 매우 잘 지켰던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석존께서 코삼비(Kausambi)국의 구시라원(瞿師羅園)에 머물고 계셨던 때의 일이다. 당시의 규칙으로서 정사에서는 한 방에 한 사람 뿐이 잘 수 없었던 것인데 어느 날 라훌라가 탁발을 하러 간 사이에 정사의 심부름 당번을 맡고 있는 비구가 한 사람의 나그네 비구에게 라훌라의 방을 빌려주고 말았다. 당시는 유행(遊行)하여 온 비구를 특히 소중히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라훌라가 돌아와서 보니 낯선 비구가 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당번인 비구가 이곳을 사용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이에 해가 저물었으며 더욱이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고 저기고 아무데도 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막연해진 라훌라는 언뜻 생각난 곳이 변소여서 그곳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하루 밤을 지새우려 했던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석존께서 때마침 그 변소 앞에 오셔서 헛기침을 하시자 속에서도 헛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런데 언제까지도 나올 기미가 없었으므로 “누구냐” 하고 묻자 “라훌라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미심쩍게 생각하신 석존께서 그 까닭을 묻자, 라훌라는 사유를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석존께서는 즉시 라훌라를 자기의 방으로 데려 와서 그 밤은 거기서 자게 하였다 그런 일이 있고 부터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미에 한해서는 두 밤만은 비구와 한 방에 동숙해도 좋다고 규칙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석존의 자못 아버지다운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라훌라는 매우 인내심이 강한 소년이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아침, 사리불을 따라 라쟈그리하(王舍城)의 거리에 탁발을 하려고 나가자 거리의 무뢰한이 갑자기 사리불의 바루 속에 모래를 집어넣고 뒤따라오던 라훌라의 머리를 몇 번이고 때리는 것이 아닌가. 사리불이 뒤돌아보니 라훌라의 얼굴은 피에 젖어 있었다. 라훌라는 옆에 있는 연못의 물로 얼굴을 씻고 “나는 화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대자비를 가르쳐 주십니다만 저런 무도한 사람은 어떻게 교화하면 좋은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즉시 석존의 곁에 가서 가르침을 구걸했다고 한다.
이런 인욕의 미덕은 갖추었다고 해도 아직은 소년이었다. 궁전에서 유유하게 길러졌을 때의 개구쟁이 기분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고 더욱이 애처로운 수도 생활에 대해서 교단 내외에서 동정의 눈길이 쏟아진 것이 역시 수행을 위해서는 장애로 되었으므로 석존께서도 그 점에 대해 특히 엄하게 지도하셨다고 전한다. 라훌라가 라쟈그리하에 있었을 적에 온천 가까운 숲 속에 머물고 있었는데 재가의 신자들이 석존께 가르침을 구하려고 찾아오면 흔히 라훌라에게 와서 “지금 세존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 라훌라는 세존께서 영축산에 계실 때에는 대숲 절(竹林精舍)에 계신다 하고 대숲 절에 계실 때에는 영축산에 계신다고 하며 재미있어 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만나면 “만나셨습니까.” 하며 유들유들 태연했던 것이다.
그러한 장난이 어느 날 석존의 귀에 들어갔으므로 석존께서는 일부러 라훌라가 있는 곳에 오셔서 이치를 다하고 정을 쏟아서 차례차례로 꾸짖었던 것이다. 라훌라는 온통 송구스러워 했고 그것이 그의 커다란 탈피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라훌라는 돌변하게 되어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그리고 어떤 작은 계율이라도 기필코 그것을 지켜 위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의 출생이나 신분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차근차근 음덕을 쌓고 조용히 좌선하는 것을 일삼았다. 그러므로 드디어 <밀행 제일>이라 하여 교단 안팎에 신망을 모으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라훌라는  훌륭한 비구였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아직 배우고 있는 사람[學人]과 다 배운 사람들[無學人] 2천인이 마음 부드럽고 순진하며 조용하게 가라앉아서 청정하며 일심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배우고 있는 사람과 배움을 마친 사람들 2천인을 보고 있는가?」
「네 보고 있습니다.」 하고 아난다는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 사람들도 앞으로 50듸 세계를 잘게 부수어서 가는 티끌로 만든 만큼의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존숭하며 그 가르침을 지키고 기억하여 최후의 몸이 되면, 동시에 시방의 나라에서 각기 성불할 것이다. 그 이름은 모두 똑같은 <보배구슬이 빛난다는> 보상여래(寶相如來), 고양을 받음에 알맞은 사람[應供], 바르고 널리 지혜를 갖춘 사람[正遍知), 지혜와 실천이 완전하게 갖춘 사람[明行足],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善逝], 세상의 모든 것에 통달하고 있는 사람[世間解], 최상의 사람[無上師], 인간의 조교사[調御丈夫], 제천과 사람들의 스승[天人師], 부처님[佛],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분[世尊]이라 할 것이다. 그 부처님의 수명은 1겁이며, 불국토의 엄정한 모습, 성문(聲聞), 보살(菩薩), 바른 교법(敎法), 바른 교법과 비슷한 가르침이 존속하는 기간에 대해서는 모두 똑 같을 것이다.」
그때 아직 배우고 있는 사람과 배움을 마친 사람 2천인이 부처님에게서 친히 예언[授記]을 받고서 마음이 환희하여 춤출 듯이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시로써 말씀 드렸다.
세존께서는 지혜의 등불이십니다. 저희들은 성불의 예언을 주시는 것을  듣고, 마음에 환희가 넘쳐흘러 죽지 않는 하늘의 술인 감로주(甘露酒)를 받아 마신 것 같이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상은 아난다와 라훌라 및 2천인의 학  무학의 사람들에 대한 수기를 서술한 장이다. 이상, 제3장 비유품(譬喩品)에서 본장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로 성문들에게 성불의 기별이 주어져서, 수기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본경(本經)에서 수기의 대부분은 이로서 완료되었다. 다음에는 비구니들이 남아있음에 불과하다. 비구니의 수기는 다음의 제13장 권지품(勸持品)에서 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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