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재가 불교 철학을 위한 시도적 논의(4)

9. 교단의 구성

 

여기에서 말하는 ‘교단’이란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믿음의 공동체를 말한다. 이 ‘교단’을 구성한 집단들은 크게 출가 불자와 재가 불자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출가 불자는 다시 수행의 정도에 따라 ‘성중’과, 그 ‘성중’을 스승을 따라 다니면서 수행하는 ‘권속’으로 구성된다. 자세한 용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聖衆;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승에 속해 있는 4果(向) 또는 解脫僧.
      (例文; … 巳時佛供의 <茶偈>에 나오는 “供養十方調御士, 演揚淸淨微妙法, 三乘四果解脫僧, 願垂哀納受, 願垂哀納受, 願垂慈悲哀納受.”; 또 <七頂禮>의 “至心頂禮供養 千二百 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眷屬; 출가 수행하는 과정에 있으나 과위를 아직 증득하지 못한 출가 수행자.
      (例文; … 某某菩薩與其眷屬)

?在家佛子; 가족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신자.
      (예문; 석가부처님 열반 당시에 장례를 담당했던 재가자들)

?이상을 표로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聖衆(출가)
            眷屬(출가)        

                    재가 불자불교 교단을 이루는 공동체 둘레

?승보와 승단의 차이점; 대승불교에서 불자들은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佛殿(혹은 塔殿; stu?pa)에 모여 ‘齋; upo?adha’를 올리는데, 그 때의 ‘茶偈’에 나오듯이 (1)十方調御士와 (2)演揚淸淨微妙法과 (3)三乘四果解脫僧에게 헌공한다.
3보 중의 하나인 ‘승보’와 ‘승단[역사적 현실적인 믿음 공동체]’은 범주가 다른 分類支이다. ‘승보’는 이념적 범주이고, ‘승단’은 현실적 범주이다. 이 두 범주의 이해를 보다 더 돕기 위해 이 두 범주 개념을 대비해 보면, (1) ‘승단’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승보’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2) ‘승보’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승단’의 범주에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3) ‘승단’에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승보’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이해를 돕기로 한다.
첫째, ‘승단’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승보’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를 먼저 보자. 역사적으로 현실적인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출가승’ 중에서 아직 일정한 수행의 경지인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4果와 4向, 그리고 해탈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수행의 과정상에 있는 승려 들’도 있다. 즉, 출가 불자인 승단에는 ‘과위를 증득한 승려들인 聖衆’도 있고, 아직 그런 과위를 증득하지는 못했지만 ‘성중’을 따르면서 수행하는 ‘眷屬; pariva?ra’들도 있다. 이 의미는 범어나 팔리어 불교문헌에서 ‘世俗僧伽; sammutisamgha’와 ‘聖衆; ?ryasamgha’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을 상기하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둘째, ‘승보’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승단’의 범주에 안 들어가는 경우를 보자.
이 경우는 재가 불자의 철학적 모색을 하는 본 포럼의 주제와도 관련된다. 재가 불자는 ‘교단’적으로는 출가 불자인 ‘승단(즉 세속승가)’에는 속하지 못한다. 물론 ‘교단’의 일원으로는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초기불교의 경우에도 재가 불자 중에서 4향, 4과에 성취한 사례들도 있고, 특히 보살승을 표방하는 대승에서는 재가 불자 중에서 해탈에 드는 경우도, 적어도 경전의 文面上으로는, 허다하다.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과위를 증득한 사람이면 ‘승보’이다. 여기에는 출가 불자이냐 재가불자이냐에 관계없다. 심지어는 불자냐 아니냐와도 무관하다. 연각승을 인정하는 화엄교학에서는 그렇다. ‘一乘’을 표방하는 화엄에서는 ‘會三歸一’이라고 해서 성문, 연각, 보살을 ‘한 배; 一乘’를 탄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위에서 발표자는 ‘승보’는 이념의 범주에 속하고, ‘승단’은 역사적 범주에 속한다고 했던 것이다.
셋째, ‘승단’에 들면서 동시에 ‘승보’인 경우를 보자.
출가 집단인 ‘세속승단’에 속해 있으면서 과위를 증득한 불자가 이 경우에 속한다. 한국의 경우는 ‘과위 증득’이라는 말 대신 선불교의 영향이 큰 관계로 ‘깨달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출가승단에 속해 있으면서 ‘깨달은 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대개는 한국의 각 종단에서 받드는 ‘종조님’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각 산문의 방장 스님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종정 스님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소위 ‘한 소식’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스님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10. 교단의 구성원이 되는 길

여기에서는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현상을 염두고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교단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불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불자에는 교단에 속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1) 출가 불자가 되는 길

현실적으로 한국에는 불교의 ‘종단’이 있다. 출가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종단’에 가서, 그 ‘종단’이 정한 법규에 따라 승가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각 ‘종단’들은 ‘원칙적’으로 일정한 이념을 공유하고, 일정한 행동강령 등을 공유한다. 일정한 이념이란 ‘경’과 ‘논’을 통해서, 일정한 행동강령이란 ‘계’와 ‘율’을 통해서 표출된다.
예를 들어 조계종은 『금강경』과『전등록』을 공동의 이념으로 표방하고, ‘비구 250계’와 각종 ‘율의’를 행동강령으로 한다. 한편 태고종은『화엄경』과  『금강경』을 공동 이념을 하고, ‘대승보살계’를 행동강령으로 한다. 이 두 종단의 차이는 여러 면에서 대비되지만 우선 승려들의 ‘결혼 허용 여부’로 구별 가능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각 종단이 과연 이념을 공유하고, 또 계와 율을 지키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념을 공유하고 또 행동강령을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는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시스템’이 없이는 궁극적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참된 종단’과 ‘수준 낮은 종단’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說法; dharmma??roceti’과 ‘齋 혹은 布薩; upo?adha’을 운영하는 것이다. 출가 불자들이면서도 일정한 시기에 모여서 위에서 말한 聖衆(혹은 불교 지도자)을 모시고 주기적으로 ‘설법’을 듣고 ‘재’를 지내는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의  승단이라 할 수 없다. ‘참된 승단’이 없으면 ‘참된 교단’도 있을 수 없다.
조계종에서는 2008년부터 포살 재회를 비로소 부활시켰다. 이와는 달리 ‘설법’의 경우는, ‘선방’에서는 방장의 주도하에 ‘上堂法門’ 또는 ‘小參法門’ 등을 실시하고, ‘강원’에서는 講主의 주도하에 ‘上講’을 한다. 

 

2) 재자 불자가 되는 길

출가 불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절’이라 하고, ‘절’은 ‘종단’에 소위 ‘사암등록’을 하게 되어 있다. 재가 불자가 되는 방법은 ‘종단’에 ‘등록’된 ‘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출가불자들이 소속 교구 또는 본사가 있듯이, 재가 불자도 소속 ‘절’이 있다. 대부분의 생활은 가정을 기반으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일정한 날짜에 소속한 ‘절’에서 열리는 ‘법회’와 ‘재’에 주기적으로 참석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속된 사암을 근거지로 하여 ‘종단’이 公認하는 ‘3귀의 5계’ 또는 ‘보살계’를 수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법회’를 통해서 이념을 다지고, ‘재’를 통해서 행동강령을 점검한다. 재가 불자들이 ‘재’에서 점점할 행동강령 즉 계는 ‘5계’ 내지는 ‘10선계’이다. 현실적으로 출가 불자들이 ‘설과’과 ‘포살’을 하듯이, 재가불자들은 절의 齋日에 출석하여 사시불공을 올리기 전에 『천수경』을 轉經하면서 <10악 참회>를 한다.
한편,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법회’를 통해서 다지는 이념은 ‘종단’마다 다르다. 이념이 같은데도 ‘종단’을 따로 차려 소위 ‘分宗’을 한다면 세속화 된 것으로서 ‘創宗’의 정당성이 떨어진다.
아무튼 ‘법회’를 통해서 이념을 다지는데, 大韓佛敎曹溪宗이 만약 선종이라면 선종의 이념이 있고, 만약 조계종이 禪敎를 竝合한 敎團이라면 선과 화엄의 이념이 있다. 마찬가지로 大韓佛敎眞覺宗에는 진각종의 이념이 있고, 大韓佛敎天台宗에는 천태종의 이념이 있다. 그 이념에 따라서 수행의 방법과 믿음 생활의 방법이 제시된다. 그러나 각각의 길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 ‘해탈’을 목표로 향해간다는 점에서는 평등하다.

 

3) 제3의 길; ‘종단’에 들지 않고 불자가 되는 방법

나는 개인적으로 재가불자도 아니고 출가불자도 아닌 ‘제3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3의 길’은,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 ‘교단’에 들어가서 ‘聖衆’의 지도를 받으면서 동시에 ‘琢磨相成’하는 도반 대중들과 함께 수행하는 ‘교단’에 入團하여 수행하는 것에 비교해, 그 성취도가 떨어지고, 또 ‘邪道’로 빠질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느 경우에도 그렇듯이, 특히 ‘제3의 길’을 가는 경우는 ‘시방에 상주하는 3寶’를 말 그대로 ‘보배로 삼아’ 자신의 수행을 점검해야 한다. 이 경우는 자기 혼자 점검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스스로에게 속기 쉽다. 그러나 불가능한 길은 아니다. 물론 이때의 ‘3보’는 ‘住持三寶’가 아니라 眞如法身을 근간으로 하는 ‘同體三寶’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에는 ‘종단’ 즉 ‘주지삼보’가 완전히 100% 非佛敎化된 타락된 집단이 아니라면, 또 내가 보기에 사실적으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3의 길’은 오늘의 현실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제3의 길’은 북한처럼 불교가 국가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또는 역사적으로 ‘주지삼보’가 없는 곳에서, 또는 ‘주지삼보’가 회생불가능 할 정도로 타락한 경우에는, 그것도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심정이 복잡하다. 왜냐하면, 부파교단과 달리 대승교단이 출현했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승의 불자들은 부파교단에서 수계를 하지 않았다. 물론 ‘結界; s?m?bandha’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 부파교단의 승단에 가서 ‘설법’을 듣지도 또 ‘재’를 함께 지내지도 않았다. 경이 달랐고, 논이 달랐고, 율이 달랐다. 3藏이 달랐다. 게다가 대승이 귀의하는 佛寶는 法身이다. 역사상의 석가세존도 ‘法身’의 ‘化身’으로 본다.
만약에 현재 한국의 불교 교단이, 상좌부와 결별을 하던 초기 대승운동의 상황이라면, ‘제3의 길’이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또 대승불교의 본래 정신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면 역시 ‘제3의 길’이 유효할 지도 모르겠다. 진각종, 진언종, 불입종, 법화종, 천태종, 원불교를 창종한 ‘宗祖님’들은 창종 당시의 불교 상황을 스스로 그렇게 진단한 것은 아닌가? 대승불교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자고 말이다. 그리하여 소위 불교적인 의미의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이들 종단을 창종한 ‘宗祖님’들은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 건국 시기에 이르기 까지 ‘嗣資相承 해 온 역사적인 僧譜’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 때에 간행된 사암채영스님의 『불조원류』가 보여주다시피, 조선에 전승된 ‘僧譜’는 모두 태고보우를 중흥조로 하여 繼代하고 있다. 태고 1세, 태고2세 식으로 말이다. 조계종이 그렇고, 태고종이 그렇고, 또 이 두 종단으로부터 ‘分宗’한 종단이 그렇다.
‘제3의 길’을 가는 불자 중에는 다른 나라에 있는 ‘교단’에 소속한 재가 불자와 출가 불자도 현재 한국에는 존재한다. 스리랑카의 교단이나 태국의 교단에서 출가 수계를 받고 한국에서 불자로서 수행 정진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유럽이 미국에서 받는 경우도 있다. 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 받은 경우도 있다. 이 경우도 역시 자신이 소속된 교단에 주기적으로 출석하여 ‘법회’와 ‘재’에 동참하는 것을 반드시 전제로 해야 한다. 

 

11. 大乘의 聖衆에 드는 방법

 

1) 정정취에 드는 길

이 문제를『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이하에서는 줄에서 기신론이라고 칭함)을 근거로 정리해 보겠다. 기신론에서는 ‘正定聚’들지 못한 중생들이 ‘정정취’에 드는 방법에 대하여 4종류의 ‘바른 믿음’과 5종류의 ‘바른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원컨대 내 마음 속에 분별하는 것을 없애서 시방 세계의 모든 곳에 널리 모든 선한 공덕을 실천하며 미래가 다하도록 한량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고뇌하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여 그들을 모두 열반의 즐거움을 얻도록 하겠다”라고 發願할 것을 제시하고, 자비를 베풀어서 급기야는 ‘非常的 실천 방안’도 제시해주고 있다.
이 방법을 따라서 수행을 하면, 그 수행의 결과로 재가 불자도 법신을 약간 체험할 수 있게 되고(=자신이 법신과 약간은 같아질 수 있게 되고), 자기 자신도 출가하고, 수행하여, 도를 이루고, 마침 내는 열반에 드는, 8相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 4종류의 바른 믿음; 진여, 불, 법, 승을 믿고 귀의하는 것.
? 5종류의 바른 실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 등을 닦는 것.
? ‘非常的’ 실천 방안; 마음이 약한 이들 중에는 자신은 사바세계에 살기 때문에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다고 스스로 고연히 걱정하는 자도 있다. 그 결과 4종의 믿음과 5종의 실천을 닦기를 포기하는 수도 있다. 이런 중생을 위하여, 그런 중생들에게는 “專念하여 타방의 부처님 나라에 환생하여 그곳에서 부처님을 항상 뵙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훗날을 기약하는 염원을 세우는 수행을 하라고 한다. ‘非常的’이라고 한 것은 발표자의 해석 용어이다.
이상의 내용을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에서는 (1) ‘관행’을 닦아서 비로법계를 깨닫는 동시에, (2)보현보살의 수많은 ‘行願’을 실천하라고 한다. 진수사문 정원법사(1011-1088)는 그 경을 중심으로 하여 수행에 필요한 일종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華嚴普賢行願修證儀』이다. 일종의 儀軌이다.

 

2) 정정취에 들어간 다음 ‘果位’를 체험하는 길

『華嚴經』의 3‘賢位’(10주, 10행, 10회향)와 10‘地位’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 수행에 관한 매뉴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철학적인 ‘화엄교학’의 논의에 들어가야 하므로, 본 포럼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는  ‘화엄교학’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하여, ‘화엄교학’을 배워 수행하려고 하는 불자들에게 공부 순서만 소개한다. 공부 순서는『華嚴經隨疏演義?』에서 제시한 방법을 따라서 하면 되겠지만, 그 방법이 원체 방대하기 때문에 우선 ‘懸(玄)談’⇒‘三賢’⇒‘十地’를 밟는 것이 지름길이다. ▣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copyright ⓒ 2007 우리불교신문, 우리불교 WTV All re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16 대형빌딩 2층/ 팩스 02) 6442-1240 /

전화 02)735-2240 /  메일: woob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