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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시자!

 

     

멍청하게 만든다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 생각을 지워버린다 // 멍게는 참 조용하다 /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 멍게는 얼마나 배려 깊은 존재인가? //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 멍게는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 멍! //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 메아리치는 텅 빈 골짜기 / 범종 소리가 난다 / 멍

                            (최승호 - ‘멍게’ 전문)


자동차가 런던 시내에 처음 등장하였을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도시의 길바닥을 가득 채운 더러운 말똥 냄새를 더 맡지 않아도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간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던 마차는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하였지만, 마차가 늘어나자 길바닥에 싸지를 말똥이 처치곤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고, 지치지도 않으면서 똥을 싸지 않는 교통수단이 나타났으니, 자동차는 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편리한 도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런던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자동차에서는 말의 똥보다 더 지독하고, 더 근본적인 배출물인 배기가스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고 냄새 지독한 말의 똥을 혐오하였지만, 자동차의 똥이 지구 전체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흔히 근대라 불리는 시대는 인간에게 많은 편리를 제공하였지만, 치유가 어려운 병을 함께 주었다. 그리고 근대문명은 우주의 순환 고리를 끊어버린 채, 혼자서 우뚝 솟아났다. 그렇게 자동차가 늘어나고, 선박이 개량되고, 빌딩이 늘어났다.

인간은 참 많은 것을 만들었고, 그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말에게 풀을 먹이고, 그 말의 똥으로 풀을 먹이던 시대는 이미 흘러가 버렸다. 지금의 우리는 석유를 빼 쓰고, 가스를 쓰고, 원자력을 이용한 전기를 꾸역꾸역 먹는 소모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유효하지 않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증명해 가는 삶. 휴식도 없고 여백도 없이 이상의 오감도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무작정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삶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시가 바로 최승호의 ‘멍게’다.

근대적 삶의 방식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전체의 삶을 망치는 행위일 수 있다. 생각은 주체에서 나오고, 주체를 강요하다보면, 객체는 손상된다. 인간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이것저것 궁리하는 동안에 지구는 끝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무엇이겠는가. 멍게처럼 ‘멍’하니 있어보는 것이다. 주인이란 의식을 버리고 자연의 종이 되어보는 것이다. 아니 자연의 종이라는 생각도 버리고 ‘그냥 있는’ 것이다.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 숨 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 버팅겨 허리를 펴고 있는 틈 /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 / 그 느리고 질긴 힘은 /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 우글거리고 있다 /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들을 /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 하릴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 나약한 힘이다 /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김기택 - ‘틈’ 전문)


그러므로 우리는 거대한 문명의 틈을 보고 존중해야 한다. 타자를 죽이는 행위는 끝내 나를 죽이는 반면 타자를 모시는 행위는 나를 모시게 된다. 내가 사는 것이 나 혼자 살아서는 살 수 없는 것이므로, 객체와 호흡하고 어우러지고, 나 아닌 것들을 모셔야 결국 내가 모셔질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모시자! 나를 모시는 유일한 길은 나 외의 모든 것을 섬기는 일이다. 받들고 살자.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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