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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거꾸로 샘

 


  차 만드는 일이 끝나고 근 한 달간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진이 다 빠졌는지 자꾸 몸이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아 학교를 닫아걸었다.

 차를 만들고 가르치는 재미에 몸이 지치는지도 모르고 잊고 지내다가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그 때서야 비로소 아는 것이 해마다 무슨 미련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만사를 제켜두고 있을 때 정읍에서 전화가 왔다.

 정주도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차 농사짓기를 권유하고 지원을 해 이제는 수확할 시기가 되었는데 막상 수확할 때가 되니 모두들 막막하다는 이야기다. 이미 저자거리에 나선 샘이니 거절하기 힘들다.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야 즐기면 그만이니 오늘 못하면 내일이 있겠지만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생업이니 사정을 둘 수 없다. 그들의 답답한 사정을 보아서는 무슨 수를 내 주어야 하겠지만 어디 그것이 다른 일도 아니고 차 만드는 일이니 당장에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만 만나 이야기라도 들어 주어야 한다.

 몇몇이서 찾아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나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 해는 때가 늦었으니 어쩔 수 없고 내년을 기약할 밖에. 가을에 물 여행을 할 때에 정읍으로 한번 가기로 하고 헤어진 것이 엊그제인데 벌써 가을이다.

 

 정읍에 도착하니 차밭을 만드신 분들과 그곳에서 차 문화교실을 하시는 분들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워라 한다.  

 정읍하면 고교시절 배우던 정읍사란 옛 노래가 생각나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다.

 달하 노피곰 도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를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 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그저 음운만 따라 읽어도 왠지 모를 슬픔으로 가슴이 짠해지는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시였었는데 지금은 스쳐지나간 세월의 바람으로 어깨가 서늘하다.

 멀리 장에 간 님을 기다리며 이제나 저재나 기다리는 근심어린 그리움이 천년의 세월 저편에서 전해오는 것을 보면 글이라는 것의 힘이 느껴진다.

 한 때 정주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때 이 정읍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척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아마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이곳을 가면서도 정주인줄만 알았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다시 정읍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일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쉽게 마을마다 합하기를 하더니 부쩍 모르는 지명이 많아졌다. 서로 자기 마을의 이름을 고집하다보니 앞 자나 뒷 자를 조합하여 뜻도 의미도 없는 이상한 도시 이름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을 볼 때 낯설음도 낯설음이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남의 나라에 의해 숱하게 바뀐 우리의 땅 이름이 다시 찾기를 하여도 서러울 터인데 이제는 스스로 난도질을 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미리 전화로 좋은 샘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던지라 먼저 북창골로 가잔다.

 북창골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가로지르는 호남정맥 위에 있는 입암산에 있는 것으로 정상에 입암(笠巖)이라는 삿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이 입암에 오르면 담양, 장성과 고창, 정읍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삼국시대에 이곳을 중심으로 산성을 쌓아 고려 때에는 몽고군과 조선시대로 내려와서는 임진, 정유재란을 겪은 곳이라고 한다. 그 때 큰 곡식 창고가 두 군데 있었는데 하나는 장성 쪽인 남쪽에 있었다고 남창, 그래서 그곳을 남창 골이라 하고 하나는 정읍 쪽에 있어 북창, 북창 골이라고 한다고 한다.

 전라 남북도를 가르는 곳으로 이 산줄기를 넘지 않고서는 오가기가 어려워 지금도 고속도로 호남터널이 이 산줄기에 있다.

 예부터 이곳은 도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왔고 지금도 북창골로 가는 길목에는 외압에 의해 해체된 그 도인들의 후손들이 자리하고 자신들의 이상향을 가꾸어가는 도량이 있다. 이정표도 없는 곳이어서 다음에 찾아 올 때 어찌하나 싶을 정도로 산길로 들어가더니 차를 세우란다.

 골짜기는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제 멋대로 자란 나무들로 엉켜 원시림에 가까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사는지 길만 빼꼼하게 계곡을 따라 나 있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낯선 모양의 집이 보이는데 아마 무속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인 듯 주먹만한 돌로 쌓은 탑이 보이고 촛불을 켰던 흔적이 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의 량도 있어 보이고 반대편 한 쪽으로 함석지붕을 한 낮은 흙집이 있다. 사람이 있는가싶어서 불러 보았더니 남루한 옷차림을 한 젊은 사람이 나왔다.

 집 뒤편으로 돌아갔더니 몇 길이나 될 성 싶은 바위가 서 있었는데 그 밑동이 도끼로 찍어 놓은 듯 패여 있었는데 사람이 서도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샘이 바위 밑에서 흐를 줄 알았는데 위에서 흐른다. 흐른 다기 보다는 떨어지는데 떨어지는 량이 밑에 동그랗게 파놓은 수곽에 넘치는 것으로 보아 만만치가 않다.

 거꾸로 솟는 샘, ‘이거 앞으로 거꾸로 샘이라고 부르자’고 즉석에서 별명을 짓고 물을 마셔 보니 물도 나무랄 데 없이 좋고 나중에 차로 마셔보니 향도 맛도 빠지지 않는다.

 ‘거꾸로 떨어지는 샘도 바위틈에서 나니 석간수로 해야 하는 건가’하니 다들 웃는다.

 명수가 있는 곳이면 모두 좋은 기도처로 생각하는 옛 어른들의 물의 발원이 여기에도 있었다. 깊은 숲 한편에서 이름도 없이 맑은 물을 내고 있는 샘 곁에 어느 누구의 원을 대신하는지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아름답다.’이외에 말이 필요 없었다. 무엇을 간절히 원하며 자연에 기대는 소박한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샘터를 뒤로하고 잠시 말을 잊고 있다가 이 좋은 곳을 저렇게 놔두느냐고 공연한 투정을 하고 정토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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