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라

열반당 마당에 들어서니 절 입구에 보이는 무너진 유적터가 있다. 이곳이 옛날 열반당 터이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흔적이 거의 없다.
현재 쿠시나가라의 열반당은 1920년대에 미얀마 스님들이 건립한 것이다.
사라쌍수가 앞에 지키고 있는 열반당 안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운 굽타시대의 거대한 열반상이 있다.
남방의 가사가 온몸을 휩싸고 있다. 상호와 발만 친견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열반상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오면 가는 것이다.
저 세상으로 갈 때는 아무도 동행해주지 않는다.
가족도 재물도 모두 허망한 것이다.
부처님의 열반. 참으로 위대하다.
부처님은 80세때 금속세공업자인 춘다가 바친 공양을 드시고 식중독을 일으켜 병이 드셨다.
그럼에도 열반에 드시기까지 설법, 교훈적 행동 또는 무언의 가르침으로써 광막한 인도 대륙 곳곳의 많은 중생들을 교화했다.
부처님이 마지막 제자로 받았던 춘다가 올린 독버섯 공양을 대접받고 열반에 들었다고 하나 이미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라로 오기전 부처님께서는 열반을 예언하셨다.
"비구들아, 내 인생은 이제 황혼에 접어들었다. 비유컨데 부서진 수레가 움직일 수 없음과 같다. 비구들아, 내가 죽는다는 것은 육신이 죽는 것이다. 여래의 육신이라 할지라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육신이 괴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래의 깨달음은 영원히 그대들과 함께 하리라."
부처님은 병든 육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묵묵히 쿠시나가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리고 사라쌍수 앞에 이르러 부처님은 그림자처럼 부처님 주변을 맴돌던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저 사라쌍수 밑에 침상을 마련하여라.”
아난존자는 나무밑에 낙엽 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덮은 초라한 침상을 만들었다.
부처님은 마치 늙은 사자처럼 오른쪽으로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우셨다.
위대한 성인의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500여명의 제자들과 쿠시나가라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슬피 울면서 부처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특히 독버섯을 공양했던 춘다의 울음소리는 더 컷다.
그때 부처님은 춘다를 위로한 뒤 다음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대 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쳤노라. 그래도 아직 미심쩍은 것이 있으면 내게 서슴치 말고 물으라."
아난이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은 모두 한 점 티끌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최후의 유훈을 하였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돌지 말고, 물과 물 처럼 화합하라. 만약에 내가 간 후에 교단의 지도자가 없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아라.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나에게도 의지할 수도 없는 일이니라.
그러므로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 의지할 것(자등명, 自燈明), 내가 가르친 진리를 등불로 삼아(법등명, 法燈明)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리라. 모든 것은 덧없다. 부지런히, 열심히 정진(精進)하라."
열반당 앞마당을 어슬렁거리다 열반지 못미쳐 있는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렸던 대장장이 집터에 세운 아쇼카의 스투파을 본 뒤 부처님을 다비했던 곳에 세워진 스투파에 참배했다.
열반의 순간까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데 멈추지 않았던 부처님.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열심히 정진하는 것일 것이다.
다시 짐을 싸서 쿠시나가라에서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로 향한다.
인도 쿠시나가라= 김원우 기자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copyright ⓒ 2007 우리불교신문, 우리불교 WTV All re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1길 16 대형빌딩 2층/ 팩스 02) 6442-1240 /

전화 02)735-2240 /  메일: woobu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