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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나가라 가는길

일정이 짧다보니 마음이 바쁘다. 마지막 차를 타고 파트나로 나왔다.
밤기차를 타고 열반지인 쿠시나가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역에 가니 표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한 사무실에 들어가 떼를 썼다.
음료수도 사다주고. 그런데 이마에 연지곤지 같이 바른(이슬람교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경우 이렇게 표시한다고 함) 이 담당자는 무엇이던지 거절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폭발해 물어봤더니 이슬람교 신자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불교신자라고 하니, 왜 한국이나 일본에 불교신자들이 많은지? 불교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이슬람교를 어떻게 보는지? 등을 물어본다.
이렇게 해서 이 담당자가 힘을 써서 결국 표까지 구하게 됐다.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라로 가기위해 힘드셨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름 고생한 것이다.
부처님은 바이샬리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비구들이여, 앞으로 석달 후 여래는 열반에 들리라."
제자들은 슬퍼하였다. 슬피우는 제자들을 뒤로하고 부처님은 모진 여름 더위를 지내고 발걸음을 쿠시나가라로 옮겼다.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열반지로 향하는 부처님께서는 너무나 힘이 드셔서 25km의 길을 무려 24번이나 쉬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코끼리가 뒤를 돌아 보듯 지나온 바이샬리를 천천히 바라보시었다고 하는 이 길을 밤기차를 타고 가니 기분이 묘하다.
새벽에 고락푸르에 도착했다. 곧바로 역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쿠시나가라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2시간을 갔다.
쿠시나라라에 도착해 일단 인도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황토로 지은 허름한 집이다. 인도의 집은 2000년전 모습 그대로 라고 하니 참으로 신기하다. 이곳에서 요기를 했다.
아들과 같이 운영하는 음식점 아저씨의 인상이 참 좋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더니 자세를 잡아준다.
갑자기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로 오는 도중에 부처님께서 교화한 바카리가 떠오른다. 이 음식점 주인처럼 순박한 얼굴이었을 것만 같다.
바카리라는 제자가 임종을 앞두고 부처님을 꼭 뵙고자 청했다. 그래서 부처님이 바카리의 집으로 갔다. 바카리는 감격하였다.
"부처님, 저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할 모양입니다. 이렇게 누추 한 곳에 왕림해 주시니 정말 저로서는 더없는 영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카리여, 나의 늙은 몸을 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너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본다'고.."
음식점에서 나와 걸어서 유적지로 향했다.
쿠시나가라 표지판을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말라의 수도인 꾸시나가라. 꾸시그라마라고도 불경에 따르면 불리워졌다는 부처님 당신께서 스스로 선언하신 4대성지 중 하나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마지막 숨을 쉬었고 와이샤카(4월 5월)달의 보름에 반열반하셨다. 몸은 존경의 뜻으로 다비되었다고 믿어진다.
부처님 열반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인도 쿠시나가라= 김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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