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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의 차이

 

이번 호에는 보시 공덕의 차이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번호에는 1, 2 조항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부처님 2) 청정 화합 승가 3) 아라한 4) 아나함 5) 사다함 6) 수다원 7) 배우는 사람들 8) 그 외 중생들  현실적으로는 1번은 불가능하다. 왜인가? ‘절에 가서 불상에 보시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반문 할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불교가 다른 종교에게 우상숭배니 하는 욕을 먹는 결과이다.
불상에 보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일 뿐이지, 결코 부처님께 공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셨지 불상에 깃들여 사시는 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승단이라는 보시의 대상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설사 불상에 보시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부처님께 보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직하고, 그 보시물의 용도는 승단을 위한 것임이 자명한 사실임을 알고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두 번째 보시의 대상인 승단에 대하여 살펴보자. 근본불교에서는 승려 개개인은 보시의 대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엇을 개개인이라고 하는가? 우포사타라는 보름에 한번 씩 열리는 계율법회를 참석하지 않는 이를 일컬음이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참 난감한 문제이다. 우포사타를 해인사에서 어쩌다가 행하다가 최근에야 다시 부활하여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원칙에 벗어나고 형식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아, 그 실효성에 문제가 많다.
근본불교 당시에는 승려가 토굴에서 생활을 하더라도 보름에 한번 열리는 이 법회에 반드시 참석하여야 하며, 몸이 아파 못 갈 일이 있더라도 다른 이에게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승려의 신분은 비구계율을 가지겠다는 서약함에 이루어짐으로 항상 그 계율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수행자들은 계율부분에 너무 무감각하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지키지 못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재물을 가지게 되는 부분에서부터 난감하기 짝이 없다. 너무나도 긴 세월동안 관례상으로나마 승려들이 재물을 취하게 되었다.
이것은 꿀과도 같고, 재물을 탐하는 승려는 개미와도 같다. 개미가 꿀맛을 위해 꿀단지에 들어가지만 죽을 것을 모름과도 같은 말이다.  이러한 뜻을 의미 있게 살펴 설사 종단 내에서 계울의식이 미진하다 하더라도 승려 개개인은 계율에 대한 명석한 판단이 요구되는 바이다. 자이나교도를 50년간 시봉한 이가 부처님께 물었다.
“저의 공덕은 얼마나 됩니까?”
“물론 공덕이 있다. 하지만, 청정 비구에게 잠깐 환희심을 낸 것의 1/16에도 못 미친다.”하셨다.
이처럼 청정비구는 굉장한 복력을 지닌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빨리어는 대중성을 위해 부호를 생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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