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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진씨 훈민정음으로 불경을 노래하다 <월인천강지곡> 발간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꿈꾼 ‘훈민정음 대장경 프로젝트’ 시작”
박해진씨

 훈민정음으로 불경을 노래한 <월인천강지곡>.  훈민정음 연구가 박해진씨는  찬불가로만 알려져 있을 뿐 누구의 저작인지 어떤 내용인지 명료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월인천강지곡』이 1447년(세종 29) 세종이 구상한 ‘훈민정음 대장경 프로젝트’의 첫 사업이었으며, 훈민정음의 교육과 보급을 위해 <석보상절>과 더불어 펴냈음을 고증한다.
 지은 인물이 누구인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일일이 『세종실록』 등과 다른 문헌 기록을 확인한 뒤 재구성하여 밝혀낸 것이다.
 박해진씨는 세종이 부처의 생애를 새로 창제한 훈민정음으로 써서 곡을 붙인 최초의 문헌임을 밝힌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훈민정음 제 동기와 목적, 한글 문장의 실험과 교육 정책, 편찬에 참여한 인물과 역할, 정부 신료들의 집요한 반대와 저항 등을 각종 문헌을 통해 규명하고, 20권의  특히 <월인석보>에 흩어져 있는 300여 곡을 모아 원문에 주석을 달아 현대어로 풀이했다.
 박씨는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꿈꾼 ‘훈민정음 대장경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훈민정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는 생각과 쓰임새의 본보기를 한곳, 한 주제로 모아 실험하고 확증해서 ‘앎’과 ‘모름’의 벽을 허문 혁명의 불꽃이다.”고 정의한다.
 이 책은 세종은 제왕으로서 어떻게 훈민정음 창제를 기획하고, 적임자를 찾아 배치하고, 실천에 옮겼고,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은 어떻게 훈민정음 창제 초기부터 세종을 보필하며 전 과정을 주관했으며,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 편찬의 핵심 편집인 신미는 어떻게 세종의 뜻을 정확하게 읽고, 대장경으로 이어져 온 동아시아 문자의 핵심을 훈민정음으로 당겨와 활용한 학승學僧이고, 선승禪僧이었음을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평전』(2014.나녹) 출간 이후 더욱 명확히 했다.
 특히 신미는 문장이 웅건하고 필력이 높아 당시에 따를 자가 없었으며, 세종의 훈민정음 사업에 신미의 불교·철학·언어학을 넘나드는 혜안과 지혜는 금상첨화였음을 문헌을 통해 최초로 입증했다.
 이 땅에서 쓴 첫 우리말 불경인 『월인천강지곡』의 악보樂譜가 남았다면 힘차고 밝은 ‘깨달음의 노래’를 지금, 이 자리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책으로 ‘기록’의 나라에서 흩어진 노래를 한 자리에 모아 다시 읽고 새긴다.
 저자 박해진(필명: 박거루)씨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 전공하고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당선돼 등단했다. 2002년 법주사 대웅보전 해체를 인연으로 혜각존자 신미 대사의 발자취를 찾아 기록하며 훈민정음 창제사와 보급사의 연구에 몰두, 2014년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간행했다. 이후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 「날아라 훈민정음」의 원전이 되기도 한다. 2021년 영어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단청의 명장으로 활동한 한석성을 인터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단청』(한석성·신영훈·김대벽·박해진)(2004)으로 정리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1998년부터 지금까지 국보·보물로 지정된 전통 건축 해체 보수, 정밀실측의 현장을 기록했다. 사진집으로 『선암사의 건축』(2007, 선암사) 등이 있다. 바둑평론가로도 활동하며 동아일보 주최 국수전 50년의 역사를 정리한 『국수산맥』(2007, 동아일보사)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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