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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만드는 데 드는 시간

 

라디오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 목소리가 나와서 나는 라디오에 나오는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방법으로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나의 이런 호기심은 전화기를 만나고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서 차츰 지워졌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많은 물건들을 쓰는 데만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희한하다.
날마다 쓰는 휴대폰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를 보이지 않게 옮길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 많은 이미지를 허공을 통해 가지고 와서 내 눈에 보이게 할 수 있었을까.
또한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에너지인 전기도 그렇다. 구리로 만든 선일뿐인데, 그것을 타고 흘러온 어떤 힘이 전등을 켜고 컴퓨터를 살게 한다. 일상에 묻혀 지내다보면 당연히 여겨지는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의 머리가 참으로 영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비단 현대문명의 어떤 것들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토기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흙에 불을 가해 단단한 그릇을 만들 생각을 하였을까. 어떻게 바퀴를 생각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흙에서 구리나 쇠를 골라낼 수 있었을까.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어진 인간의 문명은 가히 혁명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신석기 시대의 칼만 보아도 그렇다. 그 정교함과 날카로움이라니! 청동기 시대의 동경은 또 어떤가. 청동기 시대의 다뉴세문경을 현대 기술로 복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니 그 세밀함의 정도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운 문명이라는 것은 도구와 무기의 발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중에 핵심은 무기의 발달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무기의 출현이 새로운 문명의 탄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문명은 보다 빠르게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에 바쳐진 것이다. 즉 인간의 문명의 죽임의 문명인 것이다.
현대문명이라는 것도 그렇다. 최첨단의 기술은 무기에 반명된다. 심지어 두 번의 세계전쟁을 치렀기에 현대문명이 가능했다는 말도 있다. 일면 그 말에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잠수함과 원자력만 봐도 그렇다. 전쟁이 없었다면 과연 그것들이 가능하기나 하였을까.
그러나 전쟁이 없는 중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모토는 세 마디로 단정할 수 있다.
‘보다 빠르게’와 ‘보다 정교하게’ ‘보다 많이’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기계의 힘이 깔려 있다. 기술의 발달은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만의 힘으로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은 양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칼 한 자루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얼마였을까. 철기시대에는 또 어떤가.
하지만 수공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에 대해 현대문명은 비웃는다. 옷감을 짜는 것만 예를 들어도 그렇다. 손으로 일일이 실을 집어넣고, 베틀을 통해 만드는 옷감에 비해 기계를 이용한 그것은 얼마나 쉽고 빠른가.
또 대장간에서 만든 과거의 총에 비한다면 현대의 총 생산 기술은 어떠한가. 결국 사람의 손을 최소화한 현대 문명은 기계를 통해 수많은 물건을 짧은 시간에 정교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기술의 결과는 무엇인가. 세계 최첨단의 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이라크 침공 때였다. ‘보다 빠르게’ ‘보다 정교하게’ 미국의 미사일이 바그다드에 퍼부은 미사일 세례는 현대문명이 보여 준 불꽃쇼였다. 따져보면 그것은 ‘보다 빠르게’ ‘보다 정교하게’ ‘보다 많이’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었지만, 텔레비전에 비친 모습은 오락을 하는 듯한 즐거움이었다.
참으로 기술의 발달은 놀라울 정도이다. 손으로 만들면 하루 종일 걸릴 물건이 기계를 거치면 몇 분이나 몇 초 만에 만들어진다. 대장간에서 만들면 몇 분은 걸릴 물건이 기계를 거치면 몇 초 만에 나온다. 빠르고, 정교하고, 양도 많다. 시간의 단축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문명의 맹점에 대한 가장 적확한 지적을 나는 한 노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노인이 말했다.
“총 하나 만드는 데는 몇 분도 안 걸리지만, 사람 하나 만드는 데는 몇 년이 걸리는데…….”            
 이대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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