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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월주대종사 문도스님들, 은사스님 회고 기자회견

“안과 밖이 같으시고, 보살행을 실천하신 은사님 가르침 따를 것”
기자회견중인 금산사 스님들.
(좌로부터 총무국장 화평스님, 주지 일원스님,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동국대 이상장 성우스님)

 “안과 밖이 같으시고, 인격적으로 훌륭하시며, 보살행을 실천하신 은사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금산사 월주대종사 문도스님인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 금산사 총무국장 화평스님은 7월 25일 오후 3시 보제루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참가스님들은 “큰스님께서 해오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동안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아서 정리하다 보면 유훈이 정리 될 것으로 보인다. 회의를 통해 지구촌공생회와 나눔의집등 유훈을 정리하여 큰스님 정신을 잘 계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은 “큰스님께서 황망하게 입적하시어 눈물을 금할 수 없다”며 “큰스님은 저의 삶에 두가지 지침이 됐다. 94년도 개혁이후에 원장당선후 복이 많은 분이라는 주위얘기를 전해드렸더니 큰스님께서는 복 많은 것이 아니라 아껴쓴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욱 소박해지고 남으면 다른 사람에게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옆에서 지켜보면 느낀 부분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당사자들이나 제3자에게 결코 두가지로 말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판단하신대로 이해관계 얽힌 사람들 앞에서 똑같이 얘기하셨다.저도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며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은 “큰스님이 해오던 사업은 사상과 정신을 구현하신 것이다. 활동과 사업은 만만하지 않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셔서 임종을 맞이해 허겁지겁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는 인연있는 분들이 논의와 검토 통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도법스님은 “사실 저희들에게 가르침은 양적으로 많다. 그렇지만 핵심적임 부분은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뿌리이고, 만물이 한 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오셨다. 확고한 신념갖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안락과 행복을 위해 자비로운 실천을 해야 한다. 보살행 실천에 스스로의 삶을 일생동안 일관하셨다. 살아온 삶이 열반의 메시지를 견지하셨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중 주지 일원스님(사진 오른쪽)과 총무국장 화평스님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어 나눔의집과 관련해 “큰스님은 보도에 가슴 아파하셨다. 큰스님은 잘못이 있다면 수용하고, 미비한 부분은 고쳐서 사람들이 나눔의 집에 대해 안좋은 시각을 갖지 않도록 조처하라고 말씀하신 만큼 나눔의 집이 강압시대 여성침탈 역사교육장으로 유일한 만큼, 제자들의 역량을 모아 뜻이 사장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은 “큰스님이 지금까지 큰 업적 남기신 것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봉사의 정신으로 살아오셔서 가능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이사장 해임에 따른 명예실추에 굉장히 상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결과는 경찰조사와 경기도 입장이 좋게 나올 것 본다. 큰스님은 29년 초지일관 보시 한번 받은 적이 없다,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며칠전 이재명 경기지사도 분향소에 다녀갔고, 나눔의집 일에 참회한다고 한 만큼 잘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은 “나눔의집은 크고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국가적 사회적 공감과 신뢰와 지지가 있었다. 아쉽게도 미래에 대한 문제제기가 상처와 혼란으로 이어졌다. 과정에서 생긴 것인 만큼 상황을 잘 정리헤서 나눔의집이 어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느냐가 관건이다, 다듬고 채워간다면 자연스럽게 쿤 문제없이 정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금산사 총무국장 화평스님은 “큰스님은 할머니들 잘 모시는 것이 제2의 항일운동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보살행이 복지라는 말이다. 사회복지 잘하는 것이 보살행이다. 항상 진실해야 한다. 한마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항상 당부했다고 회고 했다.  
 스님들은 큰스님의 삶이 매우 소박하고, 일상적이고, 절도있게 삶이 변화하고, 향상되도록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도법스님은 “그분은 당시 파카만년필이 인기였는데 그것을 그냥 볼펜으로 알 정도로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식생활도 절도있게 하셨다. 실생활을 균형있고 조화롭게 하시면서 자기 삶을 안정적인 형태인 보살행자의 삶을 사신 분이다”고 설명했다.
 성우스님은 “큰스님은 일체중생을 전부 똑같다고 했다. 보현보살의 동체대비를 행할 뿐 출가사문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평상시 차를 타고 다니실 때 ’이뭐고‘ 화두를 드시고 자비행을 하면서 살아온 분이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이어 “큰스님은 참마음을 갖고 했던 보살행이셨다. 가식적이지 않고 가장 정직하셨다. 저희스님은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언행이 일치되는 수행자 되라고 충고하셨다. 그래서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일생동안 부지런하며 투철한 삶을 사셨다.”고 강조했다. 
 월주대종사는 80년 총무원장 소임시 전두환씨가 군부쿠데타를 일으킨뒤 불교계에 지지성명을 요구한 것에 대해 정교분리 원칙을 들며 거절했다. 이후 광주를 찾아 위로금을 전달하고 희생자 위령제 지낸 것에 보복했다.
이후 서빙고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고 나온뒤, 총무원장에서 내려와 미국으로 쫓겨가 3년을 보냈다.
 94년 종단개혁이 이뤄지며 다시 총무원장에 선출됐다. 
 94년 종단개혁은 평가가 엇갈리지만 확실한 것은 종단 60년사에 개혁이전과 이후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는 점이다. 
 종단개혁이 합법적 토대위에서 정권으로부터 독립하고 자립하는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도법스님은 “큰스님은 당신이 서있는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삶을 가꿔오신분이다. 처염상정 즉 더러운 연못에서 연꽃이 맑게 피어나는 것처럼 큰스님은 연못의 현장에서 오염되지 않도록 청정하게 완결되도록 일생을 살아오셨다. 수행은 일상적인 삶과 수행이 일치되어지는 쪽에 맞춰져 있다. 이분의 삶이 대승보살의 삶이었다.”고 정리했다.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은 “큰스님은 누구에게나 명예와 존엄성을 지켜주시며 살아왔다. 지금은 용서하고 계시지만 나눔의집 문제로 큰스님이 명예가 갑자기 실추되다보니 지병이었던 대상포진이 심해졌고, 진통제를 맞다보니 기력이 급격히 쇠퇴하셨다. 하지만 큰스님은 죽음앞에서도 당당했다.”고 말했다. 
 화평스님은 “지구촌공생회에 큰스님 수행을 하다보면 저희는 형식적인 부분이 있지만 은사스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정말로 차별하지 않고, 진실되게 사람들을 대하셨다. 체구는 작았지만 저에게는 거인같은 분이셨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주지 일원스님은 종단장과 관련 “방역은 정부 지자체 종단과 협조해 절차대로 철저히 하고 있다. 오전 10시 영결식은 종정예하께서 오셔서 법문하시고 원로스님 20여분도 참석하신다. 방역문제도 있고, 폭염도 있어 야외도량에 법석을 마련하지는 않는다. 처영문화기념관이 220평이어서 허가받은 인원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참가자들은 야외 의자에 앉게 된다. 운구는 오전 11시 20분 시작하고, 경로는 분향소앞 출발하여 도량 한바퀴 돌고 예를 올리고 템플스테이관 아래다 비장으로 이동하여 연화대에서 다비하는 순서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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