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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4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4

 

韓國人은 古來로부터 그들의 생활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불가사의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自然崇拜, 精靈崇拜, 呪力崇拜, 神堂崇拜, 외래종교와의 접촉에서 생기는 여러 崇拜 등이 바로 그것이다. 韓國人의 文化的 基層에는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 有生觀과 산악·하천·식목·암석 등 자연물에 대한 畏敬의 신앙이 차차 발달하여 모든 물체에는 정령이 잠재한다는 有靈觀, 즉 精靈觀(Animism)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은 원시사회의 공통적인 사상적 경향인 애니미즘이나 프리-애니미즘신앙과 같은 형태의 변화로서 天·地·日·月·星·辰·岩·石·山·川·動植物 등 천연 자연물에 대하여 외경심을 갖고 이를 靈的 존재로 신격화하는 원시 신앙심의 표현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불가시적, 불감각적인 애니마(Anima)나 神明도 신앙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공포의 대상이기보다는 일상의 실제적 요구에서 초월적인 힘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이는 독특한 韓國 고유의 신앙으로서 願力信仰이라 불리며 미분화시대의 애니미즘적 사고가 한층 구체화되어 사람이 본능적으로 물질이나 자연적 환경에 대해 이익을 찾고 해악을 피하려는 욕구에서 사물이나 현상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각 부족국가에서 연중행사로 행해진 祭天儀式은 고대의 민간신앙의 모습을 보여 준다. 夫餘에서는 오늘날의󰡐맞이 굿(迎鼓)󰡑이라 하여 正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馬韓에서는 귀신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먹고 마시고 춤을 추었는데 이는 바로 천신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濊에서는󰡐舞天󰡑, 高句麗에서도 󰡐東盟󰡑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大同祭와 같은 國中大會를 열어 시조 朱蒙의 母神인 󰡐隧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밖에 百濟에서도 왕이 하늘과 五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행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여러 신을 섬긴 예는 부족국가시대에 널리 나타나고 있다. 高句麗에서는 나라 동쪽의 大穴에 있는 隧穴에 󰡐隧神󰡑이 있다고 하여 시월 國中大會 때 나무로 만든󰡐隧神󰡑의 像을 神座에 놓았으며, 집의 左右에 큰 집을 지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靈星과 社稷을 받들었다.

馬韓에 있었던 蘇塗 역시 神壇과 수호신을 모시는 성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濊에서는 산천을 중하게 여기고 虎神에게 제사하였으며, 사람이 죽으면 옛집을 버리고 새로운 집을

 

 마련하여 이주하였다고 하고 있는데 산천을 중히 여긴 것은 제각기 신이 있다고 본 원시신앙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호랑이의 신을 제사한 것은 곧 산신에게 제사를 하였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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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濊族은 별자리를 보고 여러 가지 일을 預知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星占法이 발달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辰韓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날아가게 하기 위해 큰 새의 날개에 주검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는 영혼을 지상에 두는 것을 금기로 삼았던 고대인의 철학과 승천사상을 보여준다.

夫餘에서는 전쟁에 임할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소를 잡아 발톱을 보고 소의 발톱이 벌어져 있으면 흉조라 하였고, 붙어 있으면 길조라 하여 발톱이 전쟁의 吉凶을 예견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三國時代에는 佛敎·道敎 등의 여러 외래종교가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민간신앙이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祭政一致의 모습은 삼국시대 초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신앙의 대상이 된 신들도 매우 다양해져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운 도깨비를 비롯하여 偶像·疫鬼·自然神·動物神·植物神·王神·將軍神 등 많은 신들이 믿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백제의 扶餘 豊이 新羅의 金法敏과 맹세하기에 앞서 白馬를 잡아 山谷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하였고, 신라의 脫解王은 죽어서 東岳神이 되어 文武王의 꿈에 나타났다고 하며, 朴堤上의 아내는 女山神이 되었다. 그리고 신라에서는 동쪽의 吐含山, 남쪽의 智異山, 서쪽의 鷄龍山, 북쪽의 太白山, 중앙의 父岳을 五岳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는데 중국의 五岳 곧 衡山, 恒山,  泰山, 华山, 嵩山을 숭상하는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것을 통해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天神·上皇·日神·月神·天使 등의 여러 신을 인정하고 있

 

었으며, 특히 백제와 신라에서 산신을 숭상하여 산신신앙이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三國遺事』 등에는 疫神과 動物神, 기타 특별히 이름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신들이 나타나고

 

있다. 병의 신인 疫神은 處容의 설화에 나타나고 있다. 疫神을 쫓기 위한 처용 符籍이 생겼다고 한다.

또, 삼국시대에는 비를 빌기 위하여 산천과 하늘에 제사지내는 기우제 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다. 高句麗에서는 563년(平原王 5) 큰 가뭄이 있어서 왕이 식사량을 줄이고 근신하면서 산천에 기도하였다.

三國時代의 民間信仰은 오늘날에도 많은 부분이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高麗 때에는 삼국시대보다 생활면에서 민간신앙이 널리 숭앙되었다. 크게는 국가적인 행사에서부터 작

 

게는 개인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巫覡을 불러들여 의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와 아울러 민

 

간의 신에 대한 신앙도 불교와 습합하여 매우 다양하게 신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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